정연주의 배임, 이병순의 ‘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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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배임, 이병순의 ‘배임’
[기자칼럼] KBS가 비정규직 해고무효소송에서 진다면?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9.10.13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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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 주어진 임무를 저버린다는 뜻으로, 주로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에 쓴다.

지난해 8월 검찰이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기소한 혐의가 바로 ‘배임죄’였다. 국세청과 진행 중이던 법인세 부과취소 소송을 중단해, 회사에 1800억원대의 손실을 끼쳤다는 게 이유였다. 사장직 연임을 위해 경영실적 흑자를 목표로 세금환급 소송을 서둘러 포기했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지난 8월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무죄롤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정 전 사장은 법원의 권고 하에 장기간 국세청과 의견을 조율했으며, 내·외부 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등 조정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했기 때문에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 이병순 KBS 사장(왼쪽)과 정연주 전 KBS 사장(오른쪽)
이명박 정권이 지난해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정연주 전 사장을 해임하고 ‘KBS 장악’에 나섰다는 ‘익숙한’ 얘기는 잠시 미뤄두자.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내·외부 전문기관의 자문 등을 충분히 검토해 결정했기 때문”에 배임죄를 적용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내부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소송을 중단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어땠을까?

지난 12일 열린 국회 문방위의 KBS 국정감사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KBS 경영진이 지난 6월 연봉계약직 운영방안 도입을 앞두고 법무팀의 반대 입장을 묵살한 채 비정규직 대책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이 입수한 KBS 내부 공문에 따르면 법무팀은 “비정규직 해고를 앞두고 ‘법적 분쟁이 예상되며, 소송을 벌일 경우 공사(KBS)가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사측은 이를 묵살하고 대량해고를 포함한 연봉계약직 대책을 강행했다.

‘예상대로’ 계약해지를 당한 비정규직 사원들은 KBS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법무팀 의견대로 KBS가 패한다면,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은 ‘내부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치 않아’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입히게 되는 셈이다. KBS로부터 해고된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4~5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능성은 낮지 않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병순 사장과 KBS 경영진은 어떤 책임을 져야할까? KBS의 한 관계자는 “법적 분쟁 시 회사에 손실이 올 거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강행했으므로 배임혐의를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연봉계약직 운영방안은 이병순 사장의 연임과도 무관하지 않다. 취임 후 경영수지 개선을 강조해온 이 사장은 이를 바탕으로 연임에 대한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비정규직 대책은 인건비를 줄여 ‘방만 경영’을 벗어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뿐 아니라, 비정규직보호법 적용을 앞두고 정부가 유포한 ‘대량해고설’의 대표적 사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에 전병헌 의원은 국감에서 “정권의 대량해고설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 (내부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비정규직 해고를 강행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이병순 사장은 “(그런 검토 의견을) 본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 말이 맞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법무팀의 검토 의견이 어디선가 누락됐거나, 경영진의 법적 검토가 소홀했다는 얘기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내·외부 전문기관의 검토를 충분히 거치고 국세청과의 세금소송을 중단했지만 회사에 손실을 줬다며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이병순 사장의 KBS는 법무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해고를 강행해, 현재 해고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만약 이 소송에서 KBS가 패해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다면, 과연 이 사장은 ‘배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송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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