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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주의 책] ‘인문학, 세상을 읽다’ 외

‘인문학, 세상을 읽다’ (인물과사상사 / 박민영)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문의 눈으로 본 사회현상’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국한된 분석보다는 각 분야의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규명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때문에 이 책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 ‘인문학, 세상을 읽다’ (인물과사상사 / 박민영)
미디어들은 매일 새로운 소식들을 실어 나르지만 사건과 사고, 현안만 전할 뿐 깊은 내막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분석이라고 할 수도 없는 단편적인 스케치들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하는데도 살기가 힘들까? 노인들은 왜 툭하면 화를 낼까? 휴대폰만 열면, 컴퓨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만날 수 있는데 현대인은 왜 더욱 외로워할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미디어들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 문제들이 왜 발생했는지,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통찰하고 있습니다. 주목을 끄는 건 왜 우리 시대가 위기인 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입니다.

이성의 도구화, 전문화, 사회의 대규모화, 민주주의 위기, 경제적 위기, 환경의 위기 - 이 다섯 가지가 사회 전체적인 위기를 불러왔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이 분석에 동의한다면 왜 세상을 인문학으로 읽어야 하는 지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도서출판 밈 / 신주진)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는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드라마작가론이 등장한 적은 없습니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간됐다고 합니다. 드라마작가들을 진지하게 다룬 책 자체가 드문 게 우리 현실인데,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반가운 책입니다.

▲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도서출판 밈 / 신주진)
이 책은 최근 20년 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TV드라마 작가 29명을 선정, 이야기ㆍ캐릭터ㆍ트렌드ㆍ마니아 네 부분으로 나눠 이들의 작품 경향과 특성들을 분석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건 이 책의 형식입니다.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는 개별 작가들에 대한 개인사적 접근에서 벗어나 ‘작가 vs 작가’라는 포맷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작가 개인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작가들 사이의 영향관계나 유사성과 차이점까지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김수현, 김정수 등 원로작가는 물론 임성한, 서영명, 문영남 등의 문제적 중진들 그리고 김지우, 박연선 등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패기만만한 젊은 작가들까지를 꼼꼼하고 세밀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한국의 드라마작가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특히 방송작가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 같네요.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 나일등 옮김 / 후마니타스)

‘워킹 푸어’(working poor). 현재의 삶이 미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하고 가난의 덫을 더욱 강화시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 경제적 부를 얻을 수 있다’ - 예전부터 이 주장은 신화처럼 우리를 지배했지만, 요즘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 나일등 옮김 / 후마니타스)
저자는 자본주의적 노동 윤리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이를테면 계급,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경제적 부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부정합니다. “은행에서 지급 완료된 수표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 직원에게 통장에 남은 돈이라고는 고작 2달러 2센트뿐”이라면 그 사람에게 희망이 존재할까요. “의학 교과서 원고를 교열해 주고 시급을 받는 한 여성이 10년 동안 치과에 가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그 사회에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은 신자유주의 미국 사회를 살아가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의 삶 속으로 저자가 직접 뛰어들어 수년에 걸친 참여 관찰과 인터뷰를 토대로 쓴 책입니다. 때문에 거대이론이나 관념적인 주장이 아닌, ‘워킹푸어’들의 구체적인 경험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아마 미국의 가려진 이면을 이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은 ‘빈곤과 안락한 삶’의 경계에 간신히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고, 월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중산층인 것처럼 보이지만, 불안한 일자리로 늘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직장인 가운데 70% 이상이 스스로를 ‘워킹 푸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월급으로는 생계비를 충당하는 것이 빠듯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구요 퇴직 시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인 고용 불안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이미 ‘워킹푸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하고, 고용은 유지되고 있지만, 더 낳은 삶을 살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죠. 이 책은 미국의 가려진 이면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지만 ‘워킹푸어’ 사회로 돌진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앞서 보여 주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옮김 / 교양인)

〈인권의 대전환〉은 2008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이 됐습니다. 법철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인권 관련 연구를 집대성한 본격적인 인권 연구서라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인권 개념의 대전환을 이끌어낸 대담하고 획기적인 인권 이론서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옮김 / 교양인)
저자는 인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자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우리 스스로 과연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지 반문해보면 좀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자는 인권 실천을 위해 국가의 적극적 활동을 주문하면서 인권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는 데요, 최근 한국의 상황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인권’, ‘민주주의’, ‘국가’, ‘사법부’의 의미와 역할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일어난 촛불 시위, 철거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구제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했던 대체 복무제 취소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용산 참사는 〈인권의 대전환〉이 강조한 국가의 의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줍니다. 용산 참사는 이 책에서 언급한 국가의 소극적(자기 억제) 의무와 적극적 의무를 모두 저버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될 상황(자기 억제 의무)에서 공권력을 투입해 생존권을 지키려는 시민들을 진압한 반면, 시민의 주거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는 정작 외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현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첨예한 논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책이 좀 두껍고, 숙독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인내심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차폰 잔폰 짬뽕’ (사계절 / 주영하)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음식으로 찾아가는 한중일 역사 문화 기행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차폰 잔폰 짬뽕〉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100년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음식 문화가 변해 온 모습에는 동아시아가 겪은 복잡다단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 ‘차폰 잔폰 짬뽕’ (사계절 / 주영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동아시아 음식 문화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20세기 이후 다양하게 변해 왔다고 합니다. 지배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음식 문화에 개입되는 ‘민족’이라는 틀이 강화되기도 하고 진화된 음식 문화가 이 틀을 뛰어넘기도 했다고 하네요.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 있는 화교 음식의 하나인 ‘짬뽕’이 대표적인 예라고 합니다.

저자는 짬뽕과 유사한 음식의 분포를 조사하면서 이 음식이 일본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봤습니다. 흥미로운 시각인데요, 일제 침략 이후 한중일이 동일한 정치·경제적 권역에 묶이면서,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화교들이 현지화한 잔폰(나가사키 짬뽕)이 한국식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짬뽕’이 된 것이라는 것이죠. 여기에는 노골적인 민족 차별과 배제로 인해 화교의 대부분이 음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특정한 정치 사회적 맥락도 작용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음식으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흥미를 줍니다. 하지만 세계화가 로컬 푸드 시스템을 해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말부터 거세진 세계화는 전 세계를 단일한 식품 산업 시스템에 편입시켰죠. 이제 웬만한 오지를 가도 다국적 기업이 만든 식품을 찾을 수 있는 게 단적인 예입니다. 세계화는 우리의 입맛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그만큼 편리해졌으니 이제 세상이 좋아진 걸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세계화는 음식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과 결정을 제한함으로써 생활 방식과 일상생활의 깊숙한 차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은 대안적 음식 문화로 지역 사회 중심의 로컬푸드 시스템 복원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로컬푸드 시스템은 소규모 지역권역에서 주민들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 소비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지금 우리 현실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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