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예의’는 성형과 화장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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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언니가간다]

10월 26일자 <조선일보> 기사의 1면 머리말은 자극적이었다. “여성 두 명중 한명, 얼굴 고쳤다” 한마디로 한국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자 둘 중 한 명은 수술 받은 여자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음 기사로 이어진다. 나는 수술을 받지 않았지만 이건 받지 않았다기보다 받지 못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자취방 월세 보증금을 아득바득 모으지 않아도 되었다면 벌써 옛날에 눈을 좀 다듬거나 코를 살짝 집어 줬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속내 따위 조선일보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다음 기사에서 20-30대 여성들에게 성형을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98%가 여건이 되면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다음 기사는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응답자 없어” 라는 식으로 이어진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탄식 역시 판에 박힌 듯 같을 것이다. “성형중독, 외모지상주의, 정말 문제다….”

이건 조선일보만의 레퍼토리가 아니다. 우리나라 여자들을 비난하고 싶을 때 제일 간편한 게 바로 이 주제다.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외모를 꾸미는 여성은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는 혐의를 뒤집어써야 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지만 사실 한푼 두푼 주머니를 털어 알뜰히 모아서 성형을 시술받는 여성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지긋지긋한 나머지 거사를 감행한 경우가 많았다. “넌 눈이 왜 그리 쫙 찢어졌니. 코가 조금만 더 높으면 좋을 텐데, 너 어디어디는 좀 만져 줘야 되겠다….”

그런 소리를 내내 참다가 경제력이 생기면 적금이라도 들어서 승부를 내고야 마는 것이 주변에서 목격한 생활형 혹은 생계형 성형이었다. 하도 뭐라고 하니까 생활 혹은 생계에 지장을 받는 것이다. 자, 자, 봤지, 이제 더 뭐라고 하지 마. 하지만 요즘 성형의 대명제는 성형한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자연스럽게 높은 코나 손댄 티가 나는 두툼한 쌍꺼풀이 환영받지 못한지 벌써 오래됐다.

▲ 2009년 10월 16일 <조선일보> 사회 08면
이것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쌩얼 열풍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 쌩얼 열풍이 절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 그 자체가 각광받는 게 아니라는 것은 유치원생도 아는 이야기다. 푹 꺼진 눈밑, 모공이나 주름이 그대로 보이는 맨얼굴을 본다면 얼굴을 찌푸리겠지만 여러 가지 화장품의 도움을 받든 말든 전혀 손대지 않은 듯한 화사한 맨얼굴처럼 보이는 얼굴 꾸밈, 이것이 바로 모범적인 ‘쌩얼’ 이다.

이 쌩얼이라는 말이 각광받으면서 주춤하는 주장이 “화장을 하지 않고 밖에 나오는 여성은 사회생활의 기본 예의가 없다”는 것이다. 약간 주춤했을 뿐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쌩얼 메이크업’의 인기와 아무데서나 다 파는 비비크림의 매상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주장이니까. ‘예의’라는 거창한 말을 쓰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사실, 네가 성의 없는 얼굴을 들이미니까 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여성의 화장과 예의라는 단어가 또 한 번 결합할 때가 있는데 그건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을 비난할 때 사용된다. 화장이라는 것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행위이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속옷을 갈아입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비난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그렇지만 옛날처럼 집에서 남자를 기다리며 몸치장을 하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던 시대라면 모를까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요즘 같은 때에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콤팩트 뚜껑을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결국 잠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가루가 옆 사람에게 날릴 수 있는 분말형 제품이나 지나치게 향이 강한 제품인 것도 아니라서 공공장소에서 물리적인 피해를 끼칠 일이 없다면 결국 미관상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지나가는 여자 둘 중 하나가 성형했다는 호들갑은 여기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닐까.

쌩얼을 들이미는 것도 예의 없다, 남이 보는데서 탈 쌩얼의 작업을 하는 것도 예의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쌩얼처럼 보일 수 있는 시술을 받는 수밖에. 여기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항이 하나 추가된다. 혹시 성형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오랜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며 차곡차곡 돈을 모은 성실함과 시술을 받은 후 달라지고 긍정적이 된 자신에 대한 간증을 꼭 넣어야만 된장녀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은 또 한 번 동방예의지국이 되는가. 지키고 싶은 예의가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여러모로 힘든 나머지 그냥 지켜 주는 게 편한, 그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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