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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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의 은밀한 3가지 비법

남자, 화성에서 왔어요. 여자, 금성에서 왔어요. 둘은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해요. 생각도 달라요. 행동, 습관, 취미 모두가 하나도 같은 게 없어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지구라는 곳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쌈 싸 먹은 지 오래예요.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해요. 이런 둘 차이를 밝혀내는 것은 5000년 인류 역사의 소망이에요. 외계 생명체도 밝혀내던 스컬리와 멀더도 정작 지구남녀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했으니 말이에요. 여기, 지구 남녀의 차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TV 프로그램이 있어요. 싱크로율 99.9%예요. 흥미로워요. 케이블 오락채널 tvN 〈재밌는TV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연출 이성수·김경훈, 토요일 오후11시)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나가 보아요. 〈편집자 주〉(프로그램 성우 내레이션을 인용했습니다.)

■ “공감 100배”… ‘예능 다큐’ 새 장르 = 특정한 상황에서 남녀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는가. 남녀심리를 묘사한 ‘남녀탐구생활’이 장안의 화제다. 평균시청률 1.5%~2.0%(AGB닐슨), 순간최고시청률은 3.3%까지 치솟으며 케이블 기준의 ‘대박’ 행진을 이어 나가고 있다. 패션 잡지와 연애소설에서 단골로 소비되던 남녀 간의 차이가 연기로 구현되자 시청자들로부터 “공감 100배”라며 뜨거운 환호성을 받고 있는 것. 공개 코미디, 집단 버라이어티·토크쇼, 철지난 콩트가 판을 치던 지상파가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공중화장실’과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남녀,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곰신’ 여자, 운전 습관이 다른 남녀, 컴퓨터 부팅을 하면서 보여주는 남녀의 차이 등을 치밀하게 묘사한 디테일이 시청자들을 뒤흔든다. “손 따위를 씻을 필요는 없어요. 겨우 쉬야가 묻은 것뿐이잖아요”(공중화장실 남자)라거나, “여자의 수건은 머리·얼굴용·몸용으로 나뉘어요.” (대중목욕탕 여자) 등은 사소하지만 너무나 다른 남녀의 차이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 평균 남에 준하는 정형돈과 예쁘지만 밉지 않은 정가은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여기에 미국 드라마 시리즈 〈X파일〉의 스컬리 요원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 서혜정씨의 ‘~요’로 끝나는 무미건조한 내레이션이 화룡점정으로 ‘예능 다큐’의 새 장르를 탄생케 했다.

▲ tvN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공중화장실 편'. 화장실 변기에 휴지를 깔고, 그 위에서 용변을 보는 여자. 용변 후 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김밥을 먹여주는 남자 등으로 많은 공감을 샀다. ⓒtvN

■ 先 내레이션, 後 대사 없는 연기 = ‘남녀생활탐구’는 1회당 불과 7~15분밖에 되지 않는 드라마타이즈 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짜리 다큐물인 〈인간극장〉 식의 서사적 경험이 가능한데는 ‘선 내레이션, 후 대사 없는 연기’라는 공식이 숨어져 있다. ‘남녀생활탐구’에서 성우 내레이션은 촬영 보다 앞서 녹음된다. 대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내레이션을 듣고 몸짓, 발짓, 표정, 동선, 소품의 모델까지 상세하게 묘사된 지문을 토대로 연기한다.

이런 색다른 제작방식은 연기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정형돈은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요”라고 계속 물었고, 결국 스태프들을 자지러지게 하는 ‘몸 개그’ 등 애드리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김경훈 PD는 “몸 개그나 상황은 현장에서는 박장대소해도 편집하면 재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냉랭한 현실감을 제대로 묘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은밀히 나만, 혹은 동성끼리만 공유했던 사실이 폭로되는 순간을 적확하게 묘사했을 때 바로 쾌감이 밀려오는 것. 이를 이성수 PD는 “저거 나도 저랬어, 하고 말하며 ‘깔깔’이 아니라 ‘크크’하고 웃는 웃음”이라고 정의했다.

■ 1박2일 편집해서, 3분 만들었다고? = ‘남녀탐구생활’을 완성하는 마지막 비법은 살인적인 촬영분량에 있다. 영화작업을 하듯 인서트, 풀 샷, 바스트·웨스트 샷, 클로즈업, 빅클로즈업(눈·코·입)까지 찍는다. 김 PD는 “지문이 화면을 가지고 놀아야하기 때문에, 최고의 느낌을 가진 화면을 내레이션에 붙이기 위해 찍고 또 찍는다”며 “찍어도 찍어도 불안한 게 ‘남녀생활탐구’”라고 설명했다.

보통 드라마와 달리 등장인물이 제한돼 있어 카메라 2대로 NG없이 한 번에 다 찍을 수도 있지만, 지독하게 찍는다. 예컨대 손톱을 깨무는 장면이 빠지면 배우를 찾아가 찍어온다. 방송 초기에 정가은이 “뭘 찍기에 드라마보다 2~3배를 더 찍냐”며 제작진에게 부린 투정이 이해가 갈 정도다.

PD는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25년의 베테랑 성우 서혜정 씨 옆에 붙어서 일정한 톤을 유지하게 만든다. 템포가 느려지거나, 목소리가 처지고 갈라지는 순간, 다 잡아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밤12시에도 서슴없이 전화해 다시 녹음했다. 이 PD는 “톤이 조금만 낮아지면 맹구처럼 웃기고, 높아지면 발랄해져 느낌이 살지 않는다”며 “기계음처럼 처음과 끝이 똑같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량을 만들어 놓은 뒤 시작하는 편집은 살인적이다. ‘국군의 날 특집’ 편 방송을 위해 영화계 편집감독을 불렀다. 1박2일을 편집했는데 고작 3분밖에 만들지 못했다. 방송분량은 37분이었다. 하루를 더 지나고, 16분이 만들어졌다. 결국 편집감독은 두손 두발 다 들고 포기했고, 모자란 부분은 두 PD가 나눠서 편집했다. “〈일밤〉처럼 tvN 예능의 틀을 만드는 아버지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는 꿈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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