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영화평 ‘캐스트 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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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낯익은 그러나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

|contsmark0|인간 게놈지도의 완성이 최근 세계 뉴스의 화두이다. 이론 대로라면 조만간 우성 유전자만으로 만들어진 초우량종 인간이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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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헐리우드 영화의 자기복제 기술은 영화제작에 관한 한 이미 비전의 게놈지도를 완성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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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헐리우드 제작자들이 소위 ‘하이컨셉’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이 영화의 미학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전문용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그것은 ‘장사가 잘 될 것 같은가?’를 묻는 오로지 영화 마케팅적 언사이고 이 경우 영화의 줄거리 역시 단 두어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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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한 남자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남태평양의 절해고도에 표류한다. 오매불망 약혼자를 그리며 생존과의 사투를 벌인다. 시간은 덧없어 4년이 후딱 흐르고 드디어 남자는 자작 뗏목에 몸을 실어 그 섬에서 탈출한다. 어리석을 정도로 진부한 스토리는 일단 간결해서 하이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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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여기에 ‘포레스트 검프’의 듀오 톰행크스와 로버트 저메키스가 주연과 감독을 맡았다. 이 부근에서 영화는 갑자기 수퍼 하이 컨셉이 된다. 헐리우드의 서바이벌 게임은 얄밉게도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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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척놀랜드(톰 행크스)는 거칠게 해석하면 연방특급 정도가 되는 페덱스란 실명의 택배회사 중역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후예답게 그에게 시간은 늘 정복해야만 되는 강박 그 자체이다. 크리스마스 만찬을 비집고 호출기가 울리고 그는 약혼자(헬렌 헌트)를 남기고 운명의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쾅’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는 장면 10분은 저메키스가 장르 불문의 장인 반연에 이미 올라 있음을 명증케 하는 압권이다. 파도에 밀려온 소포상자 몇 개와 함께 여행사 광고지에 실렸다면 분명 지상의 낙원이었을 무인도에 놀랜드는 그렇게 지옥처럼 유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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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두 시간이 넘는 영화의 3분의 2는 톰행크스가 프라이데이 없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 ‘슬픈 열대’에서 살아 남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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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저메키스의 과장 없는 화술과 톰 행크스의 모노 드라마는 천박하지 않은 동정을 관객에게 도출해 내는데 무리가 없다. 보이스카우트의 캠핑 지침서에나 나옴 직한 야생에서의 자잔한 생존방법이 길게 이어지고 4년이란 시간이 한 커트사이로 건너뛰어도 영화 속 놀랜드가 코코넛 열매를 먹고 배앓이 하듯 가슴을 슬며시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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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세상 그 자체이다’는 메모와 함께 뜯겨져 나와 놀랜드의 무기질 프라이데이가 되는 ‘윌슨’표 배구공의 등장은 소품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면에서 내가 본 영화 중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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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영화의 흠은 다소 늘어져 버린 시나리오의 액트(act)에 있다. 영화의 사건 진행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소위 쓰리액트 작법은 헐리우드식 시나리오 쓰기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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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캐스트 어웨이는 대충 네 개의 큰 이야기 덩어리를 갖고 있어 도입부는 불필요하게 길고 에필로그는 대책 없이 미지근하다. 아마 톰 행크스 자신이 프로듀싱을 했던 관계로 제작 방정식을 갖고 달려드는 mba출신의 메이저 제작자들도 기획회의에서 “런닝타임은 100분입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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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영화기획초기에 톰 행크스가 시나리오 작가를 구하지 못 했을 정도로 외면 당했던 소재가 정작 미국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걸 보면 때론 미련함에도 보상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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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헐리우드 영화는 스토리에서 언제나 동어반복이며 스타일에서 혼성모방 이고 기획은 자기 복제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헐리우드 영화를 미국영화가 아닌 세계영화로 만든 인프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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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철저하게 낯익은 것으로 승부하고 꾸준히 볼거리를 향상하라. ‘퍼펙트스톰’을 닮은 바다, ‘포레스트 검프’식 현재 진행형 화술, 사건 없는 ‘비치’를 짜집기 해놓은 듯한 ‘캐스트 어웨이’역시 이 안에 머문다. 진부함도 때론 재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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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나는 요즘 영화를 ‘읽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로빈슨 크루소의 정치적 입장까지 헤아려 미셀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까지를 원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영화에서 너무 멀리 간 일부 평론가들의 자의적 해석과 발칙한 현학 정신에 그저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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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나는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서 행복하고 싶다. 장애가 있다면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며 자꾸 우리말 더빙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번 톰행크스는 어떤 성우가 제 격일까? 직업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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