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걸그룹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기획(6)] 여성 대중음악 뮤지션을 말한다

<여성 대중음악뮤지션을 말한다> 연재기획 순서

1. 여성가수의 음악을 둘러싼 편견들
2.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1):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3. 섹시 댄싱퀸의 존재론 (2): 김추자에서 손담비까지
4. 중성 혹은 남성형 캐릭터들: 피터팬과 톰보이 사이에서
5. 종교와 신화 사이에서 : 주술자, 사제, 여신
6. 다양한 유형을 한 자리에: 여성 그룹 (1)
7. 새로운 세대, 새로운 여성 그룹 (2)
8. 전기기타를 든 여자들
9.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학
10. 홍대 앞 여성 뮤지션
11.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

걸그룹의 백가쟁명

올해는 ‘소녀들의 시대’로 기록되지 않을까. 상징적이게도 ‘소녀’ 또는 ‘걸’의 이름을 각각 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수없이 명멸해왔던 걸그룹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등이 신보를 내고, 2NE1, 포미닛, 애프터스쿨, 티아라, f(x) 등의 신인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이러한 계보도 복잡다단하게 분화하는 중이다.

게다가 ‘걸그룹 스페셜’, 추석특집 ‘여성 아이돌 그룹 서바이벌’이나, 걸그룹의 주요 멤버(이른바 ‘G7’)가 참여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 브라운관까지 장악했다.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방송까지 결탁하는, 이들의 공감지수를 높이기 위한 미디어와의 긴밀한 공조 현상도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바야흐로 ‘걸그룹 춘추전국시대’이다.

▲ 소녀시대, 2NE1, 애프터스쿨, 포미닛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실 ‘걸그룹’에 대해 원본을 캐고 가자면 한국의 현재 양상과 멀고도 가깝다. 걸그룹이란 (연주까지 하는 밴드의 포맷과 달리) 노래와 댄스를 위주로 하는, 소녀들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음악 시스템 및 구현되는 장르/스타일은 변화를 겪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걸그룹 현상은 영미권에서 주로 말하는 좁은 의미의 ‘걸그룹’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선, 영미권에서도 역시 오래 전부터(가령 1930년대 보드빌이나 뮤지컬 시대에도) 여성만으로 구성된 노래하는 그룹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상징적인 걸그룹의 시대는 1960년대 미국의 흑인음악의 메카 ‘모타운 사운드’에 의한 것이다. 소울, 알앤비 등과 팝 사운드, 캐치한 멜로디에, (특히 소년에 대한) 순수한 그리움과 과장된 감정, 유머감각 등을 탑재한 많은 걸그룹 음악들은 1960년대 로큰롤 폭발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비틀즈를 위시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 큰 영향력을 끼친 걸 그룹은 뭐니 뭐니 해도 1990년대 후반,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다.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며 ‘걸 파워’를 증명했고, 이들과 소녀 문화는 학계의 연구대상으로 등재되었다. 더불어 미국의 TLC,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도 인기를 끌었다. 그 이후 푸시캣 돌스나, 슈거베이브스, 아토믹 키튼 등이 몇몇 걸그룹이 활동했지만, 보다 주목적인 현상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보다 흥미로운 현상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에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시스터즈, 혹은 자매들의 시대

우리에게도 소녀들(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형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걸그룹들이 탄생했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시스터즈’ 또는 ‘자매들’이라는 이름으로 산개한 이력이 있다. ‘시스터즈’란 ‘브라더즈’와 더불어 중창단 스타일의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형태를 말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모타운의 걸그룹 혹은 그 이전의 가스펠이나 소울의 포맷에서 (일본을 경유하여) 영향도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 팝음악과 일치하지는 않는다(혹은 ‘가요화되어’ 종착되었다).

1960년대 전후로 (미국진출의 원조 쯤되는) 김 시스터즈를 비롯해 이 시스터즈, 김치 캣츠, 정 시스터즈, 아리랑 시스터즈, 펄 시스터즈, 준 시스터즈, 리리 시스터즈, 체리 시스터즈, 바니 걸스 등 수많은 시스터즈들이 태어났다. 자매(혹은 친척)나 쌍둥이로 구성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연주와 노래를 모두 하는 김시스터즈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고 보컬 하모니를 강조하는 대개 중창단 스타일이었다. 펄 시스터즈가 소울 사이키델릭 ‘신중현 사운드’의 촉매제 역할을 하거나, 준 시스터즈가 ‘그룹사운드’ He5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등 다단하게 분화했지만, 대개는 작곡이나 연주까지 하는 밴드 형태가 아니라 노래만 하는 형태였다.

1980년대에는 국보자매, 서울시스터즈, 희자매 등 몇몇 시스터즈들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아이돌 소녀그룹의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형태는 1980년대까지도 별로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세 또래 정도를 들 수 있을까. 이는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일본의 소녀대를 벤치마킹한 그룹이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사실 1990년대, 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이자 공식적인 시험 무대였다).

본격적인 소녀그룹의 시대

‘아이돌 시스템’이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SES, 핑클, 베이비복스, 디바 등을 필두로 하여, 2000년대 초가 되면 샤크라, 쥬얼리, 슈가 등 소녀 아이돌 그룹들이 우후죽순 가세한다. 물론 SES와 핑클의 쌍두마차가 단연 압도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DSP미디어의 ‘기획사’ 대결로도 비쳐졌는데, 이는 두 소녀그룹의 라이벌 대결이라는 명목하에 상호적으로 인기를 추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 마디로 틴 아이돌의 음악은 ‘기획의 산물’이다. 아이돌 음악(혹은 주류 음악 대부분)에는 여러 음악내외의 위험요소들이 동반된다. 때문에 이전과 달리 음반사 혹은 기획사의 상품화 전략과 프로듀서의 기획 역량이 부각되는 시대에 접어든다. 19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 SES (왼쪽부터 바다, 유진, 슈)
가령 그룹별 좌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SES와 핑클이 모두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로 알앤비 댄스 및 발라드에 기반을 둔 팝음악으로 출발했지만, SES가 순수하고 신비로운 요정 콘셉트로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데 반해, 핑클은 ‘내수용’ 전략으로 발랄하고 친근한 ‘옆집 소녀’ 이미지에 초점을 주었다. 이에 반해 베이비복스는 처음에는 다소 빠르고 강한 랩에 파워풀한 댄스를 선보였고 〈남자에게(민주주의)〉, 〈미혼모〉, 〈머리하는 날〉 등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나 자의식이 담긴 노래들을 포함했지만, 나중에 섹시 콘셉트로 전향하고 멤버 교체를 여러 번 단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인기를 끌었다.

프로모션 방법과 타깃 등도 상호간에 중첩되지 않도록 기획되었다. 가령 SES가 일본 활동에 주력할 때라면, 핑클은 광고나 연예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자주 비춰 대중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다. 이들의 음반 발매 시기도 서로 겹치지 않게 조정되었다.

더불어 한 그룹 안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려되었다. 말하자면 그저 ‘아름다운’ 소녀가 아니라, ‘예쁜’, ‘귀여운’, ‘발랄한’, ‘보이시한’ 등의 다채로운 속성을 멤버 각각에게 부여할 수 있는 구성을 지녔다. 이전의 시스터즈와 달리 현재로 올수록 멤버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런 분화는 더욱 심화된다. 가창력이 뛰어난(그러나 외모에서는 다소 약한) 리드 보컬과, 외모에서 출중한(하지만 노래 실력은 약한) 멤버들로 위험 부담과 인기 요소를 분산시켰다.

▲ 핑클 (왼쪽부터 이진, 성유리, 옥주현, 이효리)
하지만 이들의 ‘막후’에 대해서는 오랜 난제들이 있다. 가장 먼저 ‘남성’이라는 배후를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을 만들고 기획하는 창작자(작·편곡가, 연주자, 프로듀서 등)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불어 기획사(매니저)와는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도 작동한다. 게다가 소녀그룹은 애초부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년그룹의 ‘자매편’ 정도의 포지셔닝이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가령 SES의 인기 판도에 HOT나 신화의 팬덤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소녀그룹들은 ‘남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자를 위해’ 노래하고 춤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아이돌 그룹에 찍힌 ‘기획 상품’이라는 낙인까지 부여되곤 한다. 사실 이는 너무도 진부한 공식으로 우리만의 사례가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관계로만 파악해서는 걸그룹 현상 이면의 다른 층위에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의미들을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SES와 핑클의 시대 이후, 많은 여성그룹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완전히 정상의 위치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쥬얼리 등이 선전했지만, 언제나 최고의 영예는 동방신기, 빅뱅 같은 소년 아이돌 그룹이 차지했다. 그렇지만 SES, 핑클이 데뷔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이르자, 전과는 또 다른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