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블랙홀과 한국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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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의 연예계 엎어컷] 한일 양국의 ‘찌라시 기자’를 비교해 보자

1. 20년의 블랙홀과 한국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

한국에서 록은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은 없었다. 발라드 록을 표방한 ‘부활’이 이승철의 목소리를 빌어, 1위를 차지한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2000년 들어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의 펑크락이 홍대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장기하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걸그룹 열풍만큼이나 지속성을 갖기는 어려웠다. 하물며 대중들에게 좀 더 생경한 헤비메탈은 그 축에 들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 1989년 음반을 내고 데뷔한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에게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에게나, 함께 했던 팬들 모두에게 감회가 새로운 시간이다. 블랙홀은 데뷔 후 지금까지 총 8장의 음반과 2000여 회의 공연을 펼쳤다. ‘광주항쟁’, ‘일본역사문제’, ‘촛불시위’ 등 사회적 이슈들을 자신들의 음악에 담아 표현했고, ‘가요 프로그램 순위폐지’ 등 문화연대 활동도 함께 했다.

94년 4집 앨범 〈MADE IN KOREA〉는 1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블랙홀의 대중적 인지도를 확산시켰고, 정규 8집 〈HERO〉는 2006년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최우수 록 싱글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발표한 디지털싱글앨범 〈Living in 2009〉 ‘더프레스 디프레스’(The Press Depress)에는 언론을 향한 비판적 성찰과 격려를 동시에 보낸다. “어두운 날이 다시 와 빛을 가려도 / 흔들리지 않고, 잠들지 않는 / 용기와 자부심의 / 더 프레스! / 먼 훗날 남겨진 오늘이 / 디프레스 / 떨쳐낼 힘이 되리라.”

블랙홀은 올해 10주년을 맞은 문화연대와 공동기획으로 11월 27일과 28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소월아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이번 공연의 라인업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크래쉬, 노브레인(27일)과 디아블로, 스트라이커스, 크라잉 넛(28일) 등이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블랙홀을 조명하는 언론의 수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섭외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 봤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TV 음악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난색을 표했다는 게 문화연대 측의 설명이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록 밴드의 모습을 찾는다는 건 이제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심야 음악프로그램에서조차 한국 헤비메탈 역사인 블랙홀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심야 음악 프로그램들을 보면 홍대 인디씬 가운데서도 몇몇 회자되는 인디 레이블 위주의 섭외가 이뤄지는 듯한 인상이다.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기에는 이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생략하지만, 어쨌든 이들에게 가려져 음악사에서 짚어야 하는 것조차 간과하고 넘어가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가 드는 건 사실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시절 블랙홀이 8집 타이틀곡 ‘삶’을 불렀을 때나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무대를 휘저으며 폭발하는 인디 록신의 모습을 보여준 게 아직 눈에 아른 거리기 때문이다.

2. 주린 배를 출출하게 하는 ‘심야식당’

1990년대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2000년대 넘어서는 한국만화 〈식객〉이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초밥왕〉이 아크로바틱을 연상시키는 초밥 기술의 향연을 감상했다면, 〈식객〉은 한국의 ‘전통의 맛’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최근 한일 양국에서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심야식당〉. 아베 야로의 첫 장편 데뷔작인 만화 〈심야식당〉은 2006년 10월 쇼카쿠칸에서 발행하는 ‘빅 코믹 오리지널’ 증간호에서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2009년 만화 대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무명이었던 40대의 아베 야로를 일약 스타 작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작품이다.

〈심야식당〉은 가게 이름도 따로 없는 조촐한 가계다. 이 식당에 나오는 메뉴는 단 4가지다. 톤지루(돼지 고기찌개), 소주, 청주, 맥주다. 나머진 있는 재료로 손님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준다는 게 그의 영업방침이다. 영업시간은 새벽12시부터 다음날 아침7시까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가 식당을 찾을까 싶지만 평범한 직장인부터 지역 야쿠자, 근처에서 일하는 게이, 카리스마 AV 배우, 무명의 엔카 가수, 스트리퍼 등 일본 특유의 마이너 향취가 물씬 풍긴다. 이들은 자신이 추억하는 음식을 먹으며 기억을 더듬어 간다. 계란말이, 비엔나 소시지 볶음, 네코맘마(밥 위에 가츠오부시를 얹고 간장을 살짝 뿌려 비벼 먹는 밥), 오차즈케, 포테이토 샐러드 등 가정식 요리는 하나같이 평범하지만 ‘심야’에 지켜보기에는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한다.

일본 10월 4분기 드라마 가운데 화제작은 지난달 14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TBS 〈심야식당〉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세워진 목조건물이 빼곡히 늘어선 술집 거리 ‘신주쿠 골든 가’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음식이 결합하면서 일본인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3. 한식의 세계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막걸리를 비롯해 한식까지, 세계화를 향한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다. 막걸리의 대명사로 불렸던 고려대학교는 촌스러움을 탈피하고자, 막걸리를 버렸다가 최근 이 같은 움직임이 일자 다시 슬그머니 막걸리를 학교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킨 것도 이런 움직임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예측 없는 좌충우돌 도전기로 시청자를 즐겁게 하는 〈무한도전〉의 이번 도전은 요리사였다. 정확하게는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 음식을 찾는 것이었다. 유재석 팀은 〈식객〉 만화가 허영만을 멘토로 삼고 떡갈비, 민어전, 죽통밥, 홍시샤벳에 도전했다. 담양에서 대나무를 직접 베고, 떡갈비 비법을 전수받았다. 박명수 팀은 궁중요리 전문가인 윤숙자 선생을 찾아가 호박타락죽, 김치수삼떡갈비, 단군신화전, 김치샤벳 조리법을 전문 요리선생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전수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방송한 QTV 〈예스 쉐프〉 역시 11명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선사하는 게 목표였다. 세계 최고의 7성급 호텔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헤드쉐프 에드워드 권이 한국 쉐프를 양성하기 위해 ‘키친 서바이벌’을 시작한 〈예스 쉐프〉.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로즈마리 흑돼지 꼬치, 쌈밥(블루팀) 말고기 잡채, 녹차달걀 비빔밥 (레드팀) 등이 선보였다. 제주도에서 진행된 도전이었던 만큼 특산품인 흑돼지와 말을 주된 재료로 이용했고, 채식주의자까지 섞인 세계 각국의 시식자들이 대체로 맛있었다며 6:5(블루:레드)의 박빙의 판정을 내놓았다. 한식의 세계화 열풍이 가능할까. 대세가 될 수 있을까. 판단은 쉐프의 몫으로 돌리려 한다.

4. 케이블도 고정 시청층이 생기나

케이블채널 tvN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이하 롤러코스터)가 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 방송된 〈롤러코스터〉는 전국기준 3.850%(TNS미디어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달 31일 방송분이 기록한 3.297%에 비해 0.7%P 가량 상승한 수치.

시청자들은 “케이블 본방송을 기다려보긴 처음”이라는 반응까지 쏟아내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남녀탐구생활-수능특집’ 편과 ‘PPL 극장-늙은 소년’ 편이 방송됐다. 꼴찌(정형돈)와 모범생(정가은)의 공부습관을 면밀히 관찰한 고3의 생활 1년간을 쭉 훑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최근에 수험생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80일만에 서울대 가기〉를 패러디 한 것은 흥미롭고, 중요한 지점이었다.

수능을 하루 앞둔 꼴찌 정형돈이 ‘1일 만에 서울대 가기’라고 머리꾼을 질끈 동여맨 장면은 이제 tvN이 자사의 프로그램을 패러디 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걸 보여준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개성이 묻어나는 덕분에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도 상당하다. UCC는 물론, 포털사이트 및 각 매체들에서도 독특한 화법을 활용하는 등 케이블 프로그램으로서의 돌풍은 계속 될 것 같다.

5. 한일 양국의 ‘찌라시 기자’들을 비교해 보자

한일 양국에서 삼류 주간지 기자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비교해 볼 기회가 생겼다.

TV아사히에서 지난달 16일부터 금요일 오후 9시에 방영하는 드라마 〈언터쳐블〉은 각종 사건을 심층취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혈 여기자의 활약상을 그렸다. 〈고쿠센〉으로 잘 알려진 나카마 유키에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국민저널’에서 일하다 상사와의 다툼으로 3류 언론으로 강등된 케이스다. 하지만 취재대상 만큼은 3류가 아니다.

프리랜스 기자의 예언성 기사와 신흥종교의 연관성, 소설의 위작여부, 일본 복지 모금 후원회 등 굵직한 사안들이 주요 취재 대상이다. 〈데스노트〉, 〈트릭〉 같은 작품에서 미스테리와 살인을 풀어가는 추리 알레고리의 전형성 때문인지 시청률은 첫 회 11.6%를 기록했다가 9.7%, 6.2%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으니, 일드 팬이라면 챙겨 봐도 좋을 작품이다.

신생 ‘찌라시’ 신문사의 ‘대한민국 평균 혹은 평균 이하’ 인간들이 부패한 언론과 부조리로 얼룩진 대한민국 사회를 통쾌하게 고발하는 풍자 코미디, MBC 새 수목 미니시리즈 〈히어로〉 역시 〈언터쳐블〉 주인공과 비슷한 캐릭터다. 이준기가 염탐, 미행, 도청, 잠입, 변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재 대상을 좇는 ‘먼데이서울’의 열혈 기자 진도혁 역할을 맡았다. 두 드라마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은 TV관찰기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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