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남’ 제작자 송병준이 단막극 강조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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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궁〉, 〈꽃보다 남자〉, 〈탐나는 도다〉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에게 단막극은 소중한 존재다. 송 대표는 1987년 황인뢰 PD가 담당하고 있던 MBC 〈베스트셀러 극장〉(베스트극장 전신)의 시그널 음악 제작으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연인들〉, 〈이방인〉, 〈서울 특파원〉, 〈샴푸의 요정〉,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베스트셀러 극장〉의 많은 테마와 삽입곡을 만들었다.

▲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Group8
“연출자들에게 단막극은 실험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장점이죠. 〈베스트극장〉에서 실험과 훈련을 많이 하며 두각을 나타내던 감독과 작가들은 미니시리즈로 와서도 작품들을 참 잘 만들었어요.”

이런 이유로 송 대표는 단막극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드라마가 광고판매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여유가 없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외주제작사에서 신인 연출자를 발굴해서 훈련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송 대표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DMC 센터 KGIT 빌딩에서 방송사의 단막극 부활을 위한 연재기획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기자가 송 대표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오는 12월에 출시될 21부작 〈탐나는 도다〉 DVD 음향편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송 대표는 “방송 때는 회당 60분을 기준으로 했고, DVD는  편당 53~54분으로 편집해 21개가 됐다”고 말했다.

- 〈PD저널〉은 4부작으로 ‘지상파 방송사 단막극 부활 연재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송 대표에게 단막극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시그널 뮤직을 제작하면서 방송에 입문 했습니다. 그게 1987년이었는데요. 황인뢰 감독의 〈연인들〉이란 작품이었습니다. 이후에 〈이방인〉, 〈서울 특파원〉, 〈샴푸의 요정〉,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의 음악을 맡았고, 미니시리즈 〈천사의 선택〉에서 정식으로 음악감독으로 데뷔했고요. 저에게도 단막극은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 2007년 이후로 방송사에서 단막극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어땠나요.
“단막극은 연출자들이 등용을 할 수 있었던 창구였습니다. 이전에는 미니시리즈가 8개였는데, 이것도 단박에 맡기기는 힘들었죠. 일단 실험할 수 있는 단막극에서부터 훈련했죠. 당시 MBC는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이나 다른 어린이 드라마 통해 입봉(데뷔)했습니다. 그 다음이 바로 〈베스트셀러 극장〉이었고요. 많은 극적인 실험이 있었고, 연출가든 작가든 많은 훈련이 됐기 때문에 두각을 나타낸 분들이 미니(시리즈)와서도 잘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 지상파가 수익만 좇다보니, 단막극 투자를 통해 신인 발굴을 해야하는 의무를 져버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렇게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방송사가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예전에 방송사는 신인들을 등용시킬 룸(공간)이 있었어요. 광고도 꽉 찼거든요. 그런데 이게 경쟁구도로 많이 변하면서 광고를 완판(완전판매) 할 수 있도록 해야 됐어요. 아무래도 광고주들에게 감독, 배우, 스토리 등 기획을 보여주고, 흥행성을 보장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방송사 입장에서는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타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요.”

- 그룹에이트는 원작만화에 기반 하면서, 배우들은 신인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타외주사와 역발상으로 다가갔는데요.
“다른 제작사가 스타작가나 스타 연기자에 기대고 갔다면 저희는 좋은 콘텐츠에 기댔습니다. 〈궁〉이라는 출중한 만화 원작이 있었고, 그 콘텐츠가 지니는 매력과 힘, 흥행력이 담보 돼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훌륭한 원작과 콘셉트가 좋으니까 작가도 영화판 신인이었던 이은아 작가로 밀어볼 수 있었고요.”

▲ 드라마 <궁>의 주연 윤은혜(왼쪽), 주지훈 ⓒMBC

- 지금은 톱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윤은혜 씨는 배우로서는 신인이었습니다.
“본인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윤은혜 같은 경우는 〈X맨〉 보고 처음 알았어요. 베이비복스 멤버인줄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몰라서 편견이 없었고요. 윤은혜의 이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인상을 보니 채경(주인공)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소문해서 황인뢰 감독과 함께 오디션을 봤습니다. 황 감독하고는 서로 눈빛교환해도 아는 사인데, 서로 OK했죠. 그런데 회사에서 전사적으로 말리더라고요(웃음). 결국 황 감독도 부정적으로 돌아섰는데, 제가 계속 고집을 피웠죠. 결국에는 윤은혜가 됐는데, 첫 연습하고 감독님도 너무 만족했어요.

- 다른 분들은 어땠나요.
“주지훈은 감독님이 데리고 왔고, 김정훈은 서로 OK가 돼서 했고, 그런 과정이 있었죠. MBC에서도 황인뢰 감독님이시니까, 신인한테 안정된 연기를 뽑아낸다는 신뢰가 밑바탕에 쌓여있었어요. 저희 같은 경우는 운 좋게 그런 시도로 성공사례를 놓는 힘이 됐고요. 〈궁〉 때는 원작의 힘과 연출자에 대한 신뢰, 제작사에 대한 조금의 신뢰, 그런 게 겸비가 돼서 사례를 낳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 신인을 기용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제작할 때 그랬어요. 당시 소지섭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뜨긴 했는데, 원 톱 연기자로는 KBS에서 회의적이었어요. A급 못 구해서 내려가는 반응 같은 거요. 심지어 임수정은 ‘애 누구더라’는 반응까지 나왔고요. 저는 임수정을 〈장화홍련〉에서 보고 ‘쟤, 참 괜찮다’고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시놉시스 나오자마자 바로 연락했죠. 어쨌든 ‘소지섭-임수정’ 카드를 내밀었더니 ‘우리는 외주제작 만들 줄 몰라서 외주 주는 줄 아냐’며 욕 많이 먹었습니다. 결국 종방 파티 할 때 당시 국장이던 김종식 팬 엔터테인먼트 사장님께 제가 ‘이래도 잘못했냐’고 했더니 ‘미안해. 잘했어!’ 하시더라고요(웃음)”

▲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배우들. ⓒGroup8

- 그룹에이트 이름을 가장 많이 알린 건 아무래도 〈꽃보다 남자〉일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KBS 내부연출자가 선정이 됐습니다. 연출자가 처음에는 원작을 잘 살리겠다는 취지로 덤볐는데, 작품에 깊이 빠지고 연구를 하다보면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설정으로 가게 돼 있어요. 그 분의 판단은 우리의 판단과는 많이 달랐어요. 학원물로는 실패한다. 연령대를 대학생 3-4학년 성인으로 올리자. 그렇다면 굳이 신인이 아니라 기존 스타급 연기자를 포진해야 되는 것 아니냐. 소위 말하는 원조 꽃미남들로 포진을 하자. 이런 것들이 많이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어요. 종래에는 그분이 빠지고 저희하고 색깔을 같이 할 수 있는 전기상 감독을 투입했고, 연기자도 신인을 썼죠.”

- 그룹에이트에게 신인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희가 기존 알려진 연기자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없습니다. 올곧게 아무 생각안하고, 단지 드라마에 그 캐릭터 역할만 봅니다. 신인들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은 것은 기존 배우들이 이미 구축해놓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죠. 물론 그 인지가 그 작품과 맞아떨어지면 되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되고요.”

- 외주제작사가 감독, 작가, 배우 등 신인을 쓰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외주제작을 하는데 있어 작가도 증명이 된 작가를 할 수밖에 없어요. 긴 시리즈를 이어 나가야 하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약해지거나 템포가 느려진다든가 하면 곤란하잖아요. 여러 가지 경험상 ‘아! 그 작가라면 믿고 간다’는 게 있어야겠죠. 그렇게 되다보니 스타 연기자와 스타 작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입장이니까 이해해야죠.”

- 인하우스(방송사) 출신이 아닌 PD가 드라마 PD로 성공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극히 드뭅니다. 〈2009 외인구단〉 연출한 송창수 감독이나 〈친구〉의 곽경택 감독 정도가 있는데, 윤상호 감독 정도가 방송사 출신이 아니면서 잘하는 감독이 최초가 아닐까 싶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와서 〈비천무〉, 〈태왕사신기〉를 연출했고,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이후에 저랑 〈탐나는 도다〉를 했습니다.”

▲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Group8
- 이제 그룹에이트라는 브랜드 드라마가 자리를 잡은 듯 보입니다.
“저희가 내세운다고 될 일은 아닌데, 그룹에이트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해줍니다. 신인 연기자들을 보고 ‘그룹에이트 같더라’고 하거나, 드라마를 일반시청자 보다 열렬하게 보는 DC 갤러리 같은데서는 ‘그룹8' 작품이라는 단어가 앞서서 나오고 그래요. 심지어 〈꽃보다 남자〉 때는 검색어 1위에 그룹에이트가 랭크 된 적도 있었고요. 〈탐나는 도다〉까지 하면서 그런 느낌이 갖춰진 듯 합니다.”

- 바람직한 외주사의 모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외주나나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적인 불균형의 문제입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한국 수출까지 합쳐서도 한국 드라마가 내다볼 수 있는 시장에 비해서 제작비가 너무 커졌습니다. 그 언밸런스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입니다. 드라마가 창출할 수 있는 수익가치 대비 원가가 크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정말 잘 된 작품만이 수익이 나더라는 것으로는 산업이 될 수 없습니다. 〈꽃남〉이 전체 드라마 산업구조에 표준이 될 수 없는 거죠. 200개의 드라마가 만들어 진다고 치면 상하 10개를 제외한 중간 덩어리가 수익이 있어야 합니다.”

- 현재 있는 외주제작사 가운데 수익을 내는 곳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룹에이트가 그 모델일 될 수 있을까요.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드라마제작사들이 상장을 했습니다. 상장을 한다는 것은 자금을 시장에서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 거대 통신사가 참여하면서 가용할 펀드가 생긴 곳도 있었고요. 하지만 누적적자가 커지는 결과가 나오자, 그들은 하나 둘씩 떠났죠. 시장에서 외면도 하고, 참여했던 대주주도 빠지고, 드라마 수익성을 보고 참여한 파이낸싱 창투(창업투자회사)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완전히 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서 개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해외시장도 정체 돼 있습니다. 그러니 국내에서 방송사는 경영적자를 내면서도 가장 큰 수익원인 외주 산정 제작비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어떠한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롤 모델 제시가 어렵습니다. 저희가 롤 모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정말 예외적인 한 두 작품, 그리고 단지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저희도 충분히 위험해 질 수 있고, 오히려 남보다 덜 고생하고, 위기 탈출이 쉬울 수 있었던 이유가 작품을 조금했다는 것일 겁니다.”

- 다시 단막극 이야기를 해보죠. 말씀대로 지금 한국의 드라마 산업은 방송사든 외주든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수익성 때문에라도 단막극은 요원 할 것 같습니다.
“정말 단막극 부활은 건의 드리고 싶습니다. 방송사도 이익을 내야하는 집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자면, 우리나라의 방송업계 중심에 서있는 방송3사가 제일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훌륭한 연출자를 외주에서 발굴을 해서, 훈련을 시키는 것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층이 두텁게 연출자들 형성되고, 작가들이 함께 배출되는 것도 방송 3사 덕분입니다. 이제 그 역할을 다시 방송사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끝으로 보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방송사 드라마 PD는 직원 뽑듯이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있습니다. 비쥬얼 아트를 공부한 전공자들이 많은데, 이들을 써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방송은 공영성이 있기 때문에 가치관과 어느 정도의 상식과 양식을 갖춘 이를 뽑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연출이라는 것은 미장센과 연기자의 연기와 좋은 그림을 뽑아낼 수 있는, 아트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부각하는 채용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합니다. 대부분 영상을 공부한 친구들이 CF나 영화 쪽으로 빠지고, 방송사는 미장센 구현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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