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선배, 끝장토론 한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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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탐사보도팀장 공개편지 … "정권으로부터 독립? 믿기 어려운 현실"

김인규 KBS 신임 사장에 대한 사내 반대여론이 거센 가운데, 김만석 탐사보도팀장은 27일 사내게시판(코비스)에 공개편지를 띄워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마음이 있다면 후배들과 끝장토론이라도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끝장토론’이 안 된다면 물러나라는 말도 덧붙였다.

▲ 김인규 사장 ⓒKBS
김 팀장은 ‘존경하는 김인규 선배께’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KBS를 정치·자본권력으로부터 지키러 왔다는 선배의 말을 정말 믿고 싶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대통령 선거 때 참모를 하신 선배가 사장으로 내려오신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괴로워하면서 자리를 떴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김 선배께서 ‘후배들에게 자신감과 논리로 맞서지 못하는 국·팀장들은 그만두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솔직히 저는 무슨 논리와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공영방송 직원은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한 KBS 사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참모가 사장이 되는 현실에서, 선배의 자신감과 논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사내게시판에 이 글이 공개되자, 김 팀장을 지지하는 후배들의 댓글도 잇따랐다. 한 기자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줬다”며 “상식을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세상에서 상식을 말한 선배의 용기에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다음은 김만석 탐사보도팀장의 글 전문이다.

편지 전문
존경하는 김인규 선배께,

우선 30여년만에 숙원을 이루시고 KBS사장에 취임한 것을 뒤늦게 축하드립니다. 지난 번 취임식에는 선약 있어 참석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오늘 본관 정현관 계단에 노동조합이 설치한 ‘근조 공영방송’ 구호를 보면서 문득 김선배를 떠올렸습니다. 못난 저는 항상 김선배의 능력과 인품에 대해 존경의 념을 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01년 차장도 못된 제가 주제넘게 미국 연수 가겠다고 나섰을 때 발벗고 나서 도와주시던 김선배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촛불 시위 와중에 김선배께서 KBS 1기 출신 첫 사장의 꿈을 접었을 때 안타까우면서도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의 영예보다는 KBS와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평소 선배의 도량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김선배께서 1년여가 지난 뒤 마침내 KBS사장이 되셨습니다. 김선배께서는 취임사에서 양심을 걸고 “KBS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 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정말 믿고 싶습니다.

“공영방송을 위해 투쟁해온 우리 자랑스러운 KBS 후배들의 눈동자가 이렇게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 제가 정부 입맛에 맞게 방송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난 87년 입사해 90년 ‘KBS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영어의 몸이 됐던 저는 김선배의 말씀이 눈물겹게 고마울 뿐입니다.

김선배, 진정으로 믿고 싶지만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엊그제 김선배 퇴진 투쟁에 나섰던 후배들과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 참모를 하신 선배가 사장으로 내려오신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김선배께서는 어제 “후배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자신감과 논리로 후배와 맞서지 못하는 국장과 팀장들은 그만두라“고 말씀하셨다죠. 솔직히 말해 저는 무슨 논리와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공영방송 직원은 정당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한 kbs사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참모가 사장이 되는 현실에서 도대체 김선배의 자신감과 논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로부터 KBS에 다니는 우리 아빠 엄마 우리 형, 누나, 아우, 그리고 우리 친구가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을 듣도록 한 번 만들어봅시다“는 김선배의 말씀, 나의 선후배 동료들이 목청 터져라 외치던 말이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김선배 말마따나 우리는 “파편조각처럼 갈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왜입니까? 김선배께서는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할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털어냅시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마음을 활짝 열고 누구와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런 마음이 있으시다면 <심야토론>에서 후배들과 끝장토론이라도 한 번 합시다. 안됩니까? 그러시다면 물러나십시오.

무례한 글 이만 줄입니다. 건강하십시오.

2009.11.26 김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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