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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의 연예계 엎어컷] 2집 준비하러 가는 장기하에게

좀 깎았으면 ‘미남이시네요’라고 할 뻔했던, 그의 수염은 무더기로 자란 잔디처럼 불쑥 올라와 있었다. 신림동 복학생 같은 뿔테 안경을 걸치고는 이건 랩을 하는 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 중얼거리는 건지, 넌 내말 알아듣겠냐는 시크 한 얼굴로 가사들을 읊어댔다.

귀를 기울여 가사를 좇아가다보면 끝에 가서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런 느낌은 뭔가. 가래침을 뱉어 놓은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문 듯 한 이런 찝찝함은, 노래라고 하기에는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콜라 쏟은 장판마냥 입에 쩍쩍 달라붙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난 또 뭐람.

결국 1집 장기하의 마지막 콘서트까지 갔다. 지난 25일 ‘장기하와 얼굴들’이 준비한 <정말, 별일 없었는지> 콘서트다. 조금 특별했던 것은 드라마 콘서트였다는 것. 1, 2부로 쪼개며 연극형식과 퍼포먼스와 음악이 어우러진 새로운 형식이었다.

장기하가 할 일 없어 뒹군다. 그런 장기하가 TV 속의 장기하의 공연을 본다. “쟤네는 대중성이 없어~”라며 하품을 쩍쩍 해대는 장기하, 반대편 무대에서 진짜 장기하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우와’하는 객석의 소리도 잠시, TV에는 꺼도꺼도 미미 시스터즈가 계속 등장한다. 둘인 줄 알았는데 넷이고, 넷인 줄 알았는데 여섯이다. 박자를 세는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어깨를 하나씩 올렸다 내렸다하는 무미건조한 미미 시스터즈의 댄스는 비디오 팝아트, 그 무한증식과 무한반복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 6인조 포크 락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붕가붕가레코드
장기하는 채널을 돌린다. “장기하, 네가 어떻게 바람을 피니”가 주제인 2분짜리 드라마타이즈는 막장 드라마가 무의미하게 흘러나온다. 이윽고 장기하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은 코러스라 적고, 장기하는 ‘목젖’이라고 읽는 이들이 나와 함께 멱따는 소리를 낸다. “아주 그냥 사는 게 재밌다”며 비극의 희극화를 보고있노라면 찰리 채플린 유랑극단의 21세기 재림, 은 오버인 것 같고 그것 비슷하게 부를만하다.

장기하는 재밌다. “가나다라마바사아차카타파하 으헤으헤으으헤”하고 송창식을 단박에 소환하는 능력을 가진 장 교주. 거기다 넥타이 부대가 장기하를 보러 공연장에 간다는 소문을 듣긴 했어도, 정말 객석 곳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상하로 해병대 전우회 박수를 쳐주시는 한 40대 아저씨는 장기하 노래를 거침 없이 따라 불렀다. 다 쳐다보고 그랬다. ‘따봉’이었다.

장기하는 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2008년 5월 발매한 <싸구려 커피> EP, 지난 2월 발매한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까지 지난 1년 6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2집 구상에 들어간다. 웃을 일이라고는 <개그콘서트> 밖에 없는 이 시대에 양옆으로 흔들어대는 전위적 댄스에 중독된 폐인신도들은 그의 몸짓을 환호하고 열광하며 따라했다.

갑자기 이문세가 등장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인연을 맺었을 터. 클래식 기타 하나 만을 딸랑 들고 나온 이문세는 ‘옛사랑’을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멋들어지게 연주하며, 관객들을 추억에 젖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인생, 붉은 노을도 불렀다. 코드는 좀 틀렸지만, 그러면 어떠리. 좀 더 했더라면 아마 장기하가 잊혀질 뻔 했다.

장기하의 <정말, 별일 없었는지> 콘서트는 ‘별일 없이 산다’로 시작해 ‘별일 없이 산다’로 끝났다.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하고 싶었는 듯 했지만 정작 장기하는 “저 잘 살아요. 아 그런데 별일이 있긴 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게 뭔지 말은 안했다. 장기하가 잘 나가는 게 별일이라면 별일이겠다.

장기하, 왜 너만 잘 나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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