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법 무효, 당장은 비관적…장기적으론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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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법 무효, 당장은 비관적…장기적으론 낙관”
[인터뷰] 천정배 민주당 의원
  • 김세옥 기자
  • 승인 2009.11.30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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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여당의 언론법 날치기에 항의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거리로 뛰쳐나간 두 명의 의원이 있다. 민주당 천정배·최문순 의원이다. 가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들의 장외활동은 지난 10월 헌법재판소가 언론법 날치기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도 효력을 무효화해 달라는 야당의 요구를 기각하면서 동투(冬鬪)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명이 가세했다. 같은 당의 장세환 의원이다. <PD저널>은 이들 ‘사퇴 3인방’으로부터 언론법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연속으로 듣는다. <편집자>

‘성장’이란 어른에게 쉽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성장을 위해선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대개는 익숙한 그 틀을 지키는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여당의 언론법 처리에 항의하며 의원직을 던진 후 벌써 넉 달째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놀라운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성장 여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기득권을 버리는 각오를 한 건 당장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목포의 3대 천재, 구 여당의 원내대표, 전직 법무장관, 4선 국회의원…그를 수식해온 화려한 단어들을 뒤로한 채 그는 왜 배지를 던지고 언론법 반대 투쟁에 나섰을까. 그런 그가 생각하는 언론법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지난 11월 27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 당사에서 천 의원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천정배 민주당 의원 ⓒPD저널

- 배지를 떼고 거리로 나선지 벌써 넉 달이다. 할 만 한가.

“넉 달이 금방 갔다. 그런데 국회 안에서의 활동은 까마득한 옛날처럼 떠오른다. 그만큼 밖의 생활이 편해서인 것 같다.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며 익숙해진 촛불·민주시민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게 된 건 저로선 새로운 경험인데, 그 새로운 경험이 지금은 더 편해졌다.”

- 그런데 정작 언론법은 4대강·세종시 등의 이슈에 묻혀 사라진 듯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유감이다. 이명박 정권이 우리가 수십년동안 소중하게 키워온 가치들을 한 순간에 추진력 있게 망가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신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언론법, 4대강, 세종시 논란 외에도 노조 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외고 폐지 문제 그리고 지난 대선 당시 논란이 됐다가 다시 불거진 이 대통령의 도곡동 땅 논란까지…추진력이 부러울 만큼 이 정권이 엉터리 짓을 하는 바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신을 못 차리는 측면이 있다.”

-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문제뿐일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왕좌왕하는 민주개혁세력, 특히 민주당에 있다. 18대 국회가 출범한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민주당은 어떤 성과를 냈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부터 언론법까지 MB정권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민주당은 이에 대한 대중의 앞선 분노와 투쟁의지를 조직하고 끌고나가지 못했다.

언론악법 문제가 바로 전형적인 케이스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미흡하긴 했지만 민주당과 언론악법을 반대하는 세력엔 굉장히 큰 법적 기반,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국회의장과 국회가 재투표·대리투표 등의 위법을 시정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확실하게 나서지 않고 있다.

4대강·세종시 반대 투쟁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80여명의 의원과 지도부의 역량을 중요 이슈에 일정하게 배분해 동시다발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또 국회 안에서 얌전히 투쟁한다는 건 결국 다수의 힘에 밀리는 결과밖에 낳지 못함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지 않나. 민주당이 투쟁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 언론법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언론도 큰 관심이 없다.

“언론악법의 수혜자가 되겠다는 언론들이 벌써부터 많이 나오지 않나. 기득권 언론들의 그간의 행태에 비춰볼 때 이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그런 언론들에 방송을 주는 짓거리는 해선 안 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다행인건 꾸준하게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언론악법 반대 진영에서 다양한 뉴스거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헌재가 ‘유효’ 판결? 산수도 못하는 여당”

- 문제는 기운을 내서 싸우기에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사흘 전 제가 관여하고 있는 단체의 국제회의에 잠시 들렀는데 사회자가 저를 소개하며 언론법 문제로 국회의원을 사퇴했다고 하자 유럽의 주한 대사가 관심을 보이며 언론악법 반대 투쟁의 전망을 물어왔다. 그때 전 이렇게 대답했다. ‘당장은 비관적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선 아주 낙관한다.’ 지금 상황이 녹록치 않다하여 좌절할 게 아니라 원내에선 민주당 등 야당이, 원외에선 우리(사퇴 의원들)들이 언론계, 시민들과 함께 강력하게 밀고 가면 어떤 형태로든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장기적 관점이라 하면 어느 정도인가.

“일단은 한 1년 정도로 본다. 언론악법 반대 여론은 처음부터 과반을 훨씬 넘었다. 헌재마저도 언론악법 처리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우선적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이런 반대 여론을 끌고 가면 일정 정도 여권의 굴복이 가능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의회의 다수를 여당이 점하고 있는 만큼 100%는 아닐지라도 핵심적인 부분에서 우리의 뜻을 관철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안 된다면 민주국민들이 정권을 심판하지 않겠나.”

▲ 천정배 민주당 의원 ⓒPD저널
- 헌재 사무처장이 ‘헌재는 유효 판단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여권은 사무처장이 헌재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면서 계속 ‘유효’를 주장한다.

“헌재 사무처장은 국회에 나와 공식 답변을 했다. 만약 그 답변이 잘못됐다면 헌재 소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바로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또 헌재 재판관 중 누구도 언론법을 유효라고 하지 않았다. 처음에 헌재가 모호하고 복잡하게 선언을 하는 바람에 언론들이 생방송으로 ‘유효’라고 잘못 전한 것이다. 지금 언론은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야당이 헌재에 제기한 건 권한쟁의 심판으로, 헌재는 재투표·대리투표 등을 명확히 ‘위법’이라고 판단한 후 야당 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인정했다. 9명 중 6명이 처리절차의 위법을 지적하고 시정을 말했다. 철철 넘치는 과반수다. 그런데도 여당의 법관 출신 의원조차 유효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산수도 못하나. 유효라는 해석은 사사오입 이후 최대의 폭거다. 정당성과 정의는 사라지고 벌거벗은 힘, 폭력만이 난무하는 모양새다. MB정권이 탐욕과 불의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론법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이 왜 없겠나. 국민을 믿고 사력을 다할 뿐”

- 이런 여권을 움직여 재논의를 할 수 있을까.

“MB정권이 아무리 민심을 무시해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투표결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만큼의 민주주의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결국 한나라당과 MB정권은 민심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면 다음 선거 때 도저히 정권을 유지할 수 없음을 느끼도록 하는 게 우리의 당면 목표가 돼야 한다.”

-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야당은 언론법·세종시·4대강 등과 관련한 예산을 깎아 폐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예산을 깎음으로써 언론악법 등에 대한 여당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야당과 시민들이 강력하게 연대하면 100%는 아니더라도 다음 투쟁이 가능할 만큼 얻어낼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런 결연한 의지가 없다면 야당 정치인들이 세금으로 봉급을 받으며 존립할 의미가 없다.”

- 민주당이 잘 싸울 수 있을까.

“제가 속한 당이라 비판만 할 순 없다. 기대를 걸고 싶다. 언론악법 날치기 전야, 민주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씩씩했다. 의지가 있는 것이다. 다만 지도부가 의원들의 결연한 의지를 좀 더 과감히 이끌어 투쟁해야 한다고 본다. 다수 여당에 국회가 장악됐다. 언론 상황도 다르지 않아 KBS는 이미 장악됐다고들 보고 MBC도 위태하다고 한다. 민주당은 이런 조건들을 인정하고도 모든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가. 국민이 볼 때 역량껏 싸우고 있나.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당원들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점을 아프게 새겨야 한다.”

-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수록 문제의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고교시절 수학 참고서의 서문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100번을 풀어도 안 풀릴 것 같은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노력을 하다 보면 10번도 안 돼 풀리게 돼 있다’는 말이었다.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무도한 MB정권이 우리의 요구를 과연 받아들일까. 저인들 의구심이 안 들겠나. 하지만 그럴수록 있는 힘을 다해 국민을 믿고 사력을 다해 결연한 투쟁을 하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저와 민주당 그리고 야당 의원들에겐 그렇게 믿으며 대중의 힘을 일으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당장은 앞으로 3년 동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3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힘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악법 무효화, MB정부 등장시킨 스스로의 과오를 씻기 위해서라도 놓을 수 없다”

2시간의 인터뷰 동안 천 의원에게 많은 질문을 했지만 결국 핵심은 두 가지였다. 언론법 무효화가 가능할까. 그리고 가능토록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무효화로 해야 한다는 당위적 대답은 명확하지만 무효화를 위해선 MB정권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 탓이다.

때문에 앞서 인터뷰한 최문순·장세환 의원과 마찬가지로 천 의원 역시 지나온 역사 속 올바른 결론을 도출했던 국민의 힘을 믿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사력을 다하는 것이라는 답을 꺼낼 수밖에 없는 듯 보였다.

다만 그의 답 속에는 앞선 두 명의 의원들보다 더한 무거움이 실려 있는 듯 했다. 누구의 진정성이 더하고 덜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를 상실한 현재는 없는 만큼 다선의 중진의원, 그것도 지난 정권의 핵심부에서 일했던 그에겐 지금의 현실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더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천 의원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천 의원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인에게 있어 영원한 ‘갑’인 언론”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발을 담근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천정배 민주당 의원 ⓒPD저널
- 지난해 18대 국회가 본격 출범하기 전부터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 본부장을 맡는 등 어느 날 갑자기 언론 관련 사안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자의였나.

“(웃음) 자의인 건 맞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를 선택하기 전 중진의원들이 많이 가는 곳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인 만큼 잠깐 고민하긴 했다. 그럼에도 결국 문방위로 간 것은 지난해 총선 직후 오늘의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총선이 현 정권 출범 3개월 정도에 치러졌는데 그때 이미 박정희·전두환 시절 때나 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보다 음흉하고 교활해졌다는 점이다. 일제가 식민 초반 무단통치를 했지만 3·1만세 운동 이후 문화통치를 하며 조·중·동 창간을 허용하는 등 훨씬 노회하고 교활하게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MB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공영방송 사장에 퇴진압력을 넣는 등 정권에 취약한 지상파 방송의 구조를 건드리고 나왔다.”

- 그럼에도 천 의원의 위치에서 언론 문제에 직접 나서길 결심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언론과 ‘맞장’을 뜬 동료 정치인들이 어떻게 공격당했는지를 보지 않았나.

“그렇게 물으니 조금 찔린다.(웃음) 언론의 문제가 중요해서 뛰어들긴 했지만 초반에 용감하게 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국민과 대화하는 정치인에게 있어 언론은 언제나 ‘갑’ 아닌가. 그러나 MB정권 이후 드러나는 언론의 문제를 보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 생각하게 됐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한국사회의 민주화에는 3가지 측면이 있다.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의 자유의지대로 뽑을 수 있는지, 그렇게 뽑힌 권력의 횡포가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잘 보장될 수 있는지 등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회를 국민의 의지대로 뽑을 수 있는 정도의 민주화는 달성했지만 그 외의 부분에 있어선 아직 취약하다. 권력을 감시하는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을 정권은 언론악법 등을 통해 좌지우지 하려하고, 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지켜야만 하는 기득권이라면 포기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닌가. 굳이 분류하면 저 역시 기득권을 대변하진 않지만 기득권에 속하는 자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천 의원에게 있어 언론법 무효화 투쟁은 스스로의 기득권을 던지기 위한 첫 걸음이란 의미로 들렸다. 이 말의 진정성은 현재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다만 ‘정치인 천정배’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꺼내게 만든 언론법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억해둘 뿐이다.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제대로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언론악법 문제는 그런 점에서 제 소신을 실현하기 위한 대표적 수단이 된 것 같다. 탐욕과 불의의 시대를 끝장내고 민생과 정의의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안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론 이런 시대를 부른 책임이 스스로에게도 있다고 본다. 10년 동안 국민의 기대 속에 집권을 했음에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해 이런 반동의 시대를 부른 것이다. 언론법은 지난 시기 저의 이런 과오를 씻기 위한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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