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 ‘1750명의 해고 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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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제작기 - ‘1750명의 해고 통지서’
정리해고 실체전달이 제작 주목적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야기그들의 담담한 일지 그려내려 노력
  • 승인 2001.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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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contsmark1|모두가 추웠지만, 특히 인천 부평 지역에서 느꼈던 그 혹독한 추위는 기록해야만 할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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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주제가 너무 딱딱하고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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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아기자기하고 극적인 구성은 애당초 힘든 상황이었다.(다큐멘터리에 웬 아기자기 하고 극적인? 하지만 그것이 mbc다큐의 문법이라고까지 말하는 친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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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미 피해갈 수 없는 아이템이 되었다. 회사가 2월 중순까지 2천명 이상의 인원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었고, 이 사건은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든 커다란 파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욕심이 들었다.(직업 정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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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대우사태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와 해법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고 느꼈다. 매각과 공기업화, 국민기업 논의 등 복잡한 경제학적 가설들을 분석하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히 능력 밖의 일이었고 구조조정의 한 가지 방법으로 제기된 정리해고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리라는 소박한 의도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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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하지만 그 소박한 의도마저도 제작에 들어가자 쉽지 않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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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수치나 논리보다는 실제 생활도 보여주자는 기획의도였지만 그 실제 생활을 보여줄 노동자들의 태도가 냉담했기 때문이다. 그 태도는 두 가지 정도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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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첫째로는 언론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냉소. 언제 언론이 노동자의 입장은 대변해 주기는커녕(이 정도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있는 그대로라도 전달해줬냐는 것이었다. (대우자동차 부도 과정에서의 언론은 노조의 구조조정 동의서 거부만을 부각했다) 그들의 피해의식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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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5|둘째로는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뉴스보다는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뤄진 그들의 모습이 단지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짤막한 인터뷰 이상의 취재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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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8|결국 방향은 선회될 수밖에 없었다. 한 두 명의 주인공보다는 정리해고를 둘러싼 상황이 진전되는 시시각각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현장음과 인터뷰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낸다는 것. (결국은 에필로그에 이름이 오른 1750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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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1|상황은 예견된 대로 최악의 파국으로 나갔다. 어떤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원안대로의 정리해고 강행. 1750통의 해고 통지서는 동시에 발송되었고, 같은 날 인천지역 곳곳에서 그것이 가족들의 손에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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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공장의 농성과 사흘만의 무력진압.
|contsmark35|예상과 한치도 틀리지 않게 진행된 상황들을 보며 주위에선 ‘대박 아냐?’ ‘경찰 협조로 스펙터클을 만들었네’하는 씁쓸한 비아냥이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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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8|만드는 자의 불행한 행복이랄까. 카메라에 담을 그림은 많아졌지만 그 결과는 (예상된 것이지만)너무나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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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1|프로그램을 편집하고 후반작업에 들어가면서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하고 어떤 입장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다만 평범한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현장 상황만으로 담담한 일지를 그려내고 싶었다. (물론 전쟁같은 공장 진압작전을 보며 시청자들은 담담한 공감보다는 흥분, 분노, 슬픔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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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4|그러나 만드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기로 했다. 2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천천히 올라간 해고 1750명의 명단이라는 장치를 통해 1750명이 얼마만한 양인가를 알리고 싶었던 강한 의도 외에는.
|contsmark45|소박한 의도에 비해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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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8|어느 시청자는 전화해서 너무 일방적인 노동자의 입장 아닌가, 뒤의 복잡한 문제와 논리들도 있는데 무조건 한 방향의 투쟁을 선동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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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pd의 답:“선생의 의견도 일부분 옳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와 다른 입장에서 주장하고 설명한 프로그램은 충분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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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이 프로그램은 주장을 의도하지 않았지만(의도되지 않은)효과가 한 방향으로 나가는 건 인정합니다. 그것이 절대선이라거나 100% 올바르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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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다만 정리해고만이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싶었고 그 과정을 통해 해고라는 방법이 가져오는 또 다른 부담(비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해고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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