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까마귀’ 대상 수상, KBS가 떳떳하게 자랑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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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진형(한국PD연합회 정책국장)

11월 28일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에서 박봉남 PD가 제작한 <아이언 크로우즈 (Iron Crows)>가 ‘중편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초라고 한다.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아이언 크로우즈>는 지난 7월 19일 <KBS스페셜>에서 ‘특별기획 인간의 땅 5부작’ 중 두번째로 방송된 ‘철까마귀의 날들’(이하 '철까마귀')이라는 프로그램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철까마귀’는 KBS에서 방송되긴 했지만 K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특별기획 인간의 땅 5부작’ 전체를 독립제작사인 FNS(Frontline News Service)가 제작을 맡았고, 편성이 KBS에서 이뤄졌다. 그 가운데 ‘철까마귀’는 박봉남 PD가 연출을 맡았는데 박봉남 PD 역시 KBS에 소속된 KBS의 직원이 아니라 독립PD다.

제3세계 가난한 노동자의 위대하고 가슴 아픈 노동 그려낸 ‘철까마귀’

▲ <아이어 크로우즈>(연출 박봉남 독립PD)
요즘 KBS로는 눈길이 잘 가지 않아 본방사수는 하지 못하고,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어떤 작품이길래’ 궁금하여 영상을 구해 봤다. 역시 수작이었다. ‘명품 다큐’라고 하기에 충분했고, 오히려 ‘명품 다큐’라는 수식으로도 이 작품을 온전히 규정하기에는 모자란 느낌이다. 흔히 ‘명품 다큐’라 하면 아름다고 빼어난 영상미가 1차적으로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영상으로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천혜의 항구도시라는 이곳에 가난에 찌들고 찌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대선박 해체작업을 벌인다. 말이 쉬워 ‘선박 해체’이지 인간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작업들이다. 2만톤이 넘는 배를 산소용접기와 견인기계, 그리고 사람의 힘만으로 가르고, 쪼개고, 분해한다. 선체의 모든 것을 이 작업을 통해 다시 재활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철이다. 거대한 선박의 강철 몸체가 노동자들에 의해 조각조작 해체되고 옮겨졌다. 방글라데시는 필요한 철의 80% 이상을 치타공에서의 선박해체 작업을 통해 얻는다고 한다.

바닷가 개펄에서 이뤄지는 이 작업을 노동자들은 맨발로, 때론 맨손으로 감당했고, 철을 녹이는 열기와 싸웠고, 불꽃과 싸웠다. 때론 갈라진 강철 더미에 깔려 죽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실제 ‘철까마귀’에 등장한 젊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한 명은 거대한 강철 파이프에 깔리기 직전의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실로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었다. 치타공의 노동자들은 ‘알라의 가호 덕분’이라고 했다.

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치타공의 노동자들은 가난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감당했다. “8시간 일하면 8시간이 위험하다”고 했다. 전세계 거대선박의 50%가 치타공에서 해체된다고 한다. 가난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배는 알라가 보내준 선물”이었다. 늙은 노동자는 30년을 넘게 일했고, 20살이 갓 넘은 청년 노동자도 10년을 넘겼고, 12살짜리 아이도 그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쇠를 날랐다.

‘철까마귀’ 대상 자랑하는 KBS

▲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박봉남 독립PD가 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왼쪽에서 4번째가 박봉남 PD. ⓒPD저널
‘철까마귀’를 다시 제작해 만든 ‘아이언 크로우즈’가 IDFA에서 대상을 받자, KBS가 “KBS 한국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며 보도자료를 냈다. 그걸 보고 손발이 약간 오그라드는 듯한 민망함을 느꼈다.

물론 KBS는 그런 보도자료를 낼 자격은 있다. ‘철까마귀’가 그저 KBS가 편성만 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난 2006년 KBS가 연중기획인 ‘인사이트 아시아’의 일환으로 공모한 20억 프로젝트에 당선된 기획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3세계와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FNS가 ‘철까마귀’의 무대인 방글라데시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네팔, 아르메니아 등 가난하고 혹독한 환경, 그리고 전쟁을 겪고 있는 아시아 각 나라를 다룬 ‘인간의 땅 5부작’을 공모해 당선됐고, KBS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은 것이다.

그런데 왜 민망할까?
과연 ‘지금’의 KBS가 ‘아이언 크로우즈’의 수상을 자랑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인사이트 아시아’는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추진했던 대형기획이었다. 명실상부한 한국의 공영방송을 넘어 세계 속의 공영방송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이 기획을 통해 ‘유교 4부작’, ‘차마고도 6부작’, ‘누들로드 4부작’ 등이 제작돼 방송됐다.

그런데 정연주 사장이 불법으로 KBS에서 쫓겨난 뒤 KBS에서는 더 이상 이런 기획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한 덕에 정연주 사장은 ‘적자 경영’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쓰며 마녀사냥을 당했고, 불법 덕에 사장 자리에 앉은 이병순씨는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은 덕에 흑자경영을 달성해 자랑했다.

그런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긴다더니, 정연주 사장 시절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정작 정연주 사장이 쫓겨난 뒤 엉뚱한 사람들이 챙기는 꼴이다. 정연주 흔적 지우기에 골몰했던 이병순 체제의 KBS는 ‘차마고도’ 등 명품다큐와 KBS 탐사보도팀의 보도가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자 이를 자랑했다. 더 이상 이런 프로그램과 보도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PD 300명을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던 낙하산 사장 김인규씨 체제의 KBS까지, 제3세계 가난한 노동자들의 힘겨움을 담긴 도무지 지금의 KBS와는 어울리지 않는 ‘철까마귀’를, 심지어 독립PD가 제작한 이 프로그램을 두고 자랑을 하고 있다.

KBS는 ‘철까마귀’, ‘차마고도’ 계속 지원하고 제작해야

▲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박봉남 독립PD가 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박 PD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PD저널
최영기 독립PD협회장은 < PD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박봉남 독립PD 역시 오늘의 영광이 있기 전 까지 많은 아픈 시간을 이겨내야만 했다”며 “어렵게 프로그램이 완성된 후에도 방송사의 수장이 바뀌면서 많은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고, 결국 힘들게 전파를 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연주 사장이 쫓겨나고 이병순씨가 들어선 뒤 ‘인간의 땅 5부작’이 방송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능히 짐작되고 남는다.

과연 KBS에서 앞으로 또 이 같은 기획을 접할 수 있을까? ‘철까마귀’와 같은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 KBS가 직접 제작했던 ‘차마고도’ 같은 프로그램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병순씨는 못했는데, 아니 안했는데, 김인규 사장은 과연 이런 기획을 할까? 더구나 박봉남 PD는 스스로 “나는 좌파다”라고 커밍아웃(PD저널 기고 ‘노동의 기억’ 중)까지 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무려 3년 동안 제작한 작품이 만약 지금 공모가 이뤄진다면 KBS가 제작을 지원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경사를 접하고도 마음 한켠이 답답해진다. KBS가 ‘철까마귀’의 대상 수상을 자랑하려면,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지원하고, 기획해야 한다. 그래야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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