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노래읽기 12 - 강산에의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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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 두만강 푸른 물에
|contsmark1|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contsmark2|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퍼토리
|contsmark3|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contsmark4|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contsmark5|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contsmark6|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구나
|contsmark7| 라구요
|contsmark8| 눈보라 휘날리던 바람 찬 흥남 부두
|contsmark9| 가 보지는 못했지만
|contsmark10|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어머니 레퍼토리
|contsmark11|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contsmark12|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며
|contsmark13|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contsmark14|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구나
|contsmark15| 라구요
|contsmark16| -강산에 작사·작곡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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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5|수업시간에 가끔 돌발퀴즈를 낼 때가 있어. 상품은 대개 공연티켓이지. 직접 사서 주냐고? 남의 사생활 너무 깊숙이 알려고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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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8|어쨌든 조는 걸 막는 뜻도 있고 좀 거창하게는 이 땅의 공연문화를 활성화시키자는 거룩한 의미도 있어. 웃기지 말라고? 부탁인데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좀 웃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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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1|이런 문제를 낸 적이 있지. 강산에가 부른 ‘라구요’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가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 제목은 무엇인가. 난 못 맞힐 줄 알았거든. 근데 어떤 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그냥 맞혀버리는 거야. ‘굳세어라 금순아’라고. “어떻게 알았냐니까” 자기는 가끔 <가요무대> 본다는 거야. 대단한 젊은이라고 칭찬해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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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94년인가. ‘대학가요제’를 고대에서 할 때 2부 특별공연 제목이 ‘한국대학가요사’였거든.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었어. 죽은 김광석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정말 목이 터지게 불렀던 그 무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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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7|노찾사는 ‘사계’를, 안치환은 ‘광야에서’를 불렀고 아이들은 ‘고래사냥’을 합창했지. 그때까지도 강산에라는 이름이 시중에 많이 알려져 있진 않았거든. 다만 ‘라구요’라는 노래만은 꼭 레퍼토리에 넣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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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0|통일, 통일 하지만 ‘라구요’만큼 통일의 대의를 살려줄 노래는 찾기 힘들더라고. 수소문했는데 결국 나오지 못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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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3|그때 한창 머리 치렁치렁한 가수들 규제할 때였거든. “뒷머리를 묶고라도 나오면 안 되겠느냐”니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출연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 호기가 맘에 들더군. 하는 수 없이 출연학생 중의 하나가 비슷하게 불렀는데 나중에 대상 받았다는 거 아냐. 걔가 이한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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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6|어찌 됐든 나중에 머리 안 묶어도 될 때 다시 그를 만났는데 한 마디로 쿨하더군. 멋진 것도 멋진 거지만 찬바람이 쏴 스쳐 지나가더라니까. 길게 얘기할 엄두가 안 나더군. 그 후 ‘대학가요제’에 그를 단골손님으로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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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9|이번 삼일절에 강산에 콘서트에 갔었어. 제목이 있더군. ‘강산에 소풍가자’.
|contsmark50|소풍하면 생각나는 시인 없어? 왜 천상병 시인 있잖아. 죽어서 더 자유로워진. 어쨌든 소극장엔 자유를 꿈꾸는 소풍객들로 빽빽하더라. 노는 꼴들을 보니 이십대 삼십대가 주류더군. 십대한테는 밀렸지만 사십대인 내가 보기엔 그래 아직 좋을 때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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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3|우리도 다 그런 때가 있었다니까. 사춘기 때 학교에선 오자정신이라는 걸 외우게 했지. 유신시절이었잖아. 자주, 자조, 자립, 자결, 자위 이렇게 다섯 개가 ‘오자’였어. 오자라고 쓰고 보니까 잘못 쓴 글자 그러니까 오자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왜 이런 생각이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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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6|강산에는 이름에서부터 오자가 아닌 ‘이자’가 느껴져. 돈놀이에서 말하는 이자 말고 자유 자연에 걸쳐 있는 이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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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9|그의 노래에선 딱 두 가지 자유와 자연이 느껴져. 사는 데 자유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 그것 땜에 머리 깨지며 피 흘리고 싸우잖아. 또 자연은 어떻고. 자연을 거스르는 일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다는 거 나 진작에 알아차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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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2|젊은애들이 연신 일어났다 앉았다 들썩이는데 내 앞자리 오른쪽 끝에 조신하게 앉아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더라. 난 그냥 저 분이 강산에 어머니가 아닐까 싶었어. 그랬으면 좋겠더라니까. 공연 끝나고 무대 뒤에 가봤거든. 역시 나의 짐작은 적중했어. 어머니시더군. 연신 고개를 숙이시며 우리 아들 잘 봐주세요 당부하시는 거야. 우리나라 엄마였어. 아 이 엄마가 바로 바람찬 흥남부두에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그 분이시구나. 강산에가 늘 ‘라구요’는 오로지 엄마, 우리 엄마 위로하려고 만들었다고 고백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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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5|공연 끄트머리에 강산에가 멋진 말로 마무리하더라. 저를 제외한 세상 사람 모두 나비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다 나비인 거예요. 그럼 나는 뭐죠? 난 애벌레죠. 불쌍해 하지 마십시오. 저도 실은 나비가 되길 꿈꾼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 맘 속에도 나비 한 마리 춤추고 있었지. 그래 해방시켜 주자. 봄이니까 이제 산에 들에 나비들 펄럭일텐데 그 중엔 강산에를 닮은 나비 한 마리쯤 있는 것도 괜찮을거야. 나비야. 너도 소풍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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