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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8일 오후 11시 15분

심층취재-세상을 바꾼 사람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 조작,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2005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큰 파장과 변화를 몰고 온 역사적인 사건은 대부분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그들을 공익을 위해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라 부른다. 한쪽에서는 세상을 바꾼 시대의 양심으로 칭찬받으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조직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공익제보자들. 12월 9일 UN이 정한 세계 反(반)부패의 날을 맞이하여 세상을 바꾼 내부고발 ? 양심선언을 돌아보고,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의 조건을 모색해 본다.

■ 공익제보, 그 후... 세상으로부터 왕따!

빵집 주인이 된 변호사, 블루베리 농장을 일구는 건축감리원, 이등병으로 불명예제대를 한 육군 장교. 이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와 부정을 세상에 알린 대가로 삶이 바뀌어 버린 공익제보자들이다.

양심선언을 통해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세상에 밝히고, 삼성특검을 이끌어 낸 김용철 변호사는 배신자라는 비난 속에 세상에서 잊혀져갔고, 2000년 인천공항 건설 당시 터미널 부실공사를 지적했던 건축감리원 A씨는 다시는 건축업계에서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됐다. 또한 2005년 큰 충격을 안겨줬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을 제보했던 연구원들은 신원이 공개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한 언론사에서 1990년 이후의 공익제보자 2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이 제보 이후 직장에서 징계나 해고, 집단 따돌림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고 답했다.

“거의 왕따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왕따!” 1990년 감사원의 내부 비리를 폭로한 후 구속, 파면 당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의 말처럼 공익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했지만, 그로 인해 불이익과 고통을 겪고 있는 공익제보자들의 현실을 취재했다.

▲ ⓒMBC
■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있다?

자신을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10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는 정국정(46)씨. 그는 부서 내 부품 거래 관련 비리를 회사 감사팀에 제보하고 난 이후, 회사 내에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했고 결국 해고되었다고 주장한다. 10년간 소송에만 매달리다 보니 마흔 살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모든 삶을 놓쳐버렸다는 그. 그러나 한 개인이 기업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했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부패신고의 처리 및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보상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적용 범위가 공공기관의 부패신고에 한정되어 있어 민간 부분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미흡하다. 최근 민간 부분의 보호까지 포함하는 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법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것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미국은 공익제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을까? PD수첩은 세계 최초로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도입한 미국을 찾아가 보았다. 공익제보자를 지원하고 대변하는 비영리단체인 ‘내셔널 휘슬블로어 센터’와 미국 사회의 변화에 일조한 공익제보자들을 직접 만나 미국의 공익제보자 보호 및 지원체계를 확인했다.

■ 공익제보를 바라보는 시선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09년 부패인식지수(CPI)는 오만,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같은 세계 39위. UN반부패협약의 가입국이며, 올해 무역규모 세계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경제선진국으로서는 여전히 부끄러운 기록이다. 공익제보자를 위한 법의 정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익제보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다.

‘내셔널 휘슬블로어 센터’의 대표 마이클 콘은 내부고발을 수용함에 있어 동서양이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한 차이는 네덜란드의 경영학자인 트롬페나즈의 ‘딜레마 실험’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의리와 공익이 대치되었을 경우 공익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실험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결과는 공익보다는 개인의 의리와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PD수첩은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목소리

영화 ‘인사이더’의 실제 주인공이자 담배회사의 실체를 알린 제프리 와이건. 그의 양심고백은 WTO의 담배규제기본협약을 이끌어 냈고, 담배곽에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경고 문구와 사진이 실리게 했다. 현재도 아이들을 위한 금연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그는 PD수첩의 인터뷰에서 공익을 위한 제보는 당시 치른 고통과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도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익제보는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2003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 부실로 오염된 혈액이 유통되고 있다는 내부 직원들의 제보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 졌다. 그 결과 2004년 이후, 수혈로 인한 감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1987년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일궈낸 대통령 직선제, 보안사 폐지, 군부재자투표에서의 부정 원천차단 등은 모두 역사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온 공익제보 혹은 양심선언의 결과였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공익제보로 인해 환수한 금액은 총174억여원. 그러나 용기 있는 제보자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런 큰 가치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공익제보자들은 여전히 배신자란 비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바꾼 목격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진정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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