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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파업을 계속하는 이유
  • 승인 2001.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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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반 년 가까이 파업을 계속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쉬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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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하지만 cbs의 우리 pd들, 기자들, 아나운서와 엔지니어들은 한국 방송사상 최장 기간의 이 파업을 몸뚱아리로 실제로 겪어낸, 흔치 않은 경험의 소유자가 됐다. 돼 버렸다. 실제 해보니까, 역시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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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파업 6개월. 어쩌면 간단하다. 월급을 못 받고 6개월을 견딘다는 뜻이다. 6개월 정도 먹고 살 건 언제나 준비해 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제법 즐겁게 파업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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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하지만 문제는 대한민국의 월급쟁이 중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또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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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어떤 조합원의 표현대로, 우리들의 경제적 또는 ‘생계적’ 어려움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 한계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할 지, 그것조차 불투명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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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매일매일의 ‘파업 생활’ 속에서는 주위의 시선들도 견디기 쉽지 않다. 정상적인 출퇴근을 그만둔 지 6개월. 30대 중후반의 남성이 낮시간에도 집 주위에서 배회하는 건, 적어도 남들에게는 그리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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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의 ‘도대체 저 사람은 뭔가’ 하는 듯한, 미심쩍어 하는 시선 정도는 익숙해진 지 제법 오래 됐고, 아내 대신 아이를 찾기 위해 들르는 유치원 선생님의 눈빛은 오늘도 ‘아직도 회사에 안 나가시나요’ 라고 어쩌면 안타깝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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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파업을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어쩌면, 장모님이 어렵게 던지는 한 마디 ‘회사에서는 아직도 별 소식 없나’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제일 갑갑한 건 사실은 ‘방송은 계속 잘 나오던데’ 하는 주위 사람들의 ‘별 생각 없는’ 한 마디 씩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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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시간은 흐르고,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는 이미 차 버렸고 아내의 표정은 하루가 다르게 어두워지고 한 편에서는 또 내가 사는 이유라고 말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뭉개져가고 있고, 존경했던 선배가 무너져 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렇게 파업의 세월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세월이 이제 무려 반 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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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pd들만큼 세상을 넓게 알아야 할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 pd들도, 어쩌면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 지긋지긋한 파업을 겪으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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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상식과 진실과 합리 같은,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이야기해왔던 중요한 가치들이, cbs의 경영진에 의해서 처참하게 깨지고 있는 모습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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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그렇게 어쩌면 우리 cbs pd들은, 중요한 교훈들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변화와 개혁과 발전은, 헌신과 기다림과 희생 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 기꺼이 내가 파업을 계속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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