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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우리를 중독되게 하는 몇 가지

눈 뜨면 변하는 세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져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영화 카피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 500만 화소짜리 디지털 카메라를 사들고 흥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1000만 화소도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PDP와 LCD도 헷갈리는 참에 LED까지 등장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어쩌면 지난 10년간 디지털기기와 미디어의 변화보다 최근 1~2년간 변화의 폭이 훨씬 큰지도 모른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걸어 다니며 TV를 보고 인터넷을 즐기는 세상을 꿈꾼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식상한 풍경이 됐다. 그렇게 최첨단 디지털기기와 결합한 미디어는 우리 삶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이 글은 2010년을 맞는 현재, 그 달라진 풍경에 대한 사소한 기록이다. 끊임없이 ‘터치’와 ‘클릭’을 부르는 ‘잇’(IT) 제품과 서비스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가상의 인물을 통해 들여다봤다. 굳이 ‘현재’를 살펴본 것은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상상하는 순간, 그 미래는 벌써 눈앞에 현실이 돼 있을 테니까. /편집자주

[動의 미디어]손 안의 새로운 세상-스마트폰

10년 동안 ‘01X’ 번호를 버리지 않고 써온 삼순이는 최근 큰 결심을 했다. 2G폰에서 3G폰으로 갈아타기로 한 것이다. 10년간 써온 번호 몇 자리가 바뀐다는 게 뼈아프긴 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조만간 식별번호를 ‘010’으로 통합한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마당에 조금 서두른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어 보였다.

특히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아이폰’이었다. 2년 전 미국 뉴욕에 출장을 갔다가 애플 스토어에서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던 아이폰. 이후 한국에 돌아와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그녀다.

2년을 기다렸는데 출시된다, 안 된다 말만 무성했다. 플랫폼이 다르다느니, 무선인터넷 개방 서비스가 어떻다느니 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녀가 궁금한 건 단 하나였다. 아이팟은 잘만 팔리는데, 아이폰은 왜 안 돼?

그렇게 매일 인터넷 검색창에 ‘아이폰 출시’를 입력하던 그녀는 마침내 11월 22일부터 예약판매를 한다는 기사를 확인하고 속으로 ‘올레!’를 외쳤다. 당장 예약 신청을 했는데, 그때부터가 또 문제였다. KT는 배송 날짜를 두고 말을 바꿨고, 상담원과의 전화 연결은 수백 통에 한번 될까 말까였다. 늑장 배송에 기다리다 못한 삼순이는 결국 우체국까지 직접 찾아가서 아이폰을 손에 넣었다.

▲ 애플사의 스마트폰 아이폰 3Gⓢ ⓒApple
처음엔 엄청난 요금이 두려워 인터넷 사용도 제대로 못하던 그녀. 디시인사이드 ‘아이폰’ 갤러리와 각종 카페들을 통해 ‘선배 유저(user)’들의 사용후기와 팁(tip)을 수집하고서야 아이폰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은 아이폰이 아니던가. 마침내 그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면 작은 액정 속에 원치 않는 콘텐츠만 꽉 차 있던, 게다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요금 걱정에 전전긍긍하던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Wi-Fi(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는 곳이나 KT의 유료 무선랜 서비스 지역인 네스팟존 어디서나 무료로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다음(daum) 사이트 등은 메뉴 구성과 자막 크기가 적절한 것은 물론, 터치로 조작하기도 간편하다.

인터넷을 하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있으면 바로 캡처나 저장을 할 수도 있고, 아이티스토리(iTISTORY)를 통해 블로그 포스팅까지 할 수 있다. 또 DMB 기능은 비록 없지만 앱스토어에서 ‘아프리카TV’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면 실시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고, 제때 챙겨보지 못한 〈1박2일〉, 〈지붕 뚫고 하이킥〉도 다운받아 고화질로 즐길 수 있다.

막 올린 포스팅에 댓글이 달렸다. 삼순이의 친구 희진이다. 희진이는 삼성전자의 옴니아2를 쓴다. 삼성이 아이폰을 경계한다느니, SK텔레콤이 가입자 유출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면서 희진이와도 은근한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됐다. 요즘은 만날 때마다 서로 자기의 스마트폰이 더 괜찮다면서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듣기로는 옴니아가 최악의 IT 기기 중 하나로 선정됐다고 하는데, 삼순이가 그런 얘기를 하면 희진이는 발끈한다. 대신 희진이는 옴니아2가 지상파DMB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내비게이션보다도 똑똑하다며 듬뿍 애정을 드러낸다.

어찌 됐든 삼순이와 희진이는 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함께 있는 시간에도 손에서 아이폰과 옴니아2를 떨어뜨려놓을 줄 모른다. 집에 있을 때도 삼순이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언제나 아이폰이다. 디카도 필요 없고, 요즘 많이 쓴다는 넷북도 필요성을 못 느낀다. TV 시청부터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기능까지 모두 아이폰이 대신한다. 덕분에 집에 있는 4GB짜리 PMP와 얼마 전에 산 1000만 화소짜리 디지털 카메라는 폐물 취급이다. 첨단기기가 등장할수록 기존 기기들의 수명은 단축된다. 어쩐지 속고 사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靜의 미디어]집 안에서 만나는 세상-IPTV

삼식이는 요즘 휴일에도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밀린 빨래하랴, 밀린 〈무한도전〉 보랴, 외출할 틈이 없다. 삼순이도 주로 집에서 만난다. 어차피 삼순이가 와봤자 각자 할 일 하기 바쁘다. 삼순이는 최근 구입한 아이폰에 푹 빠져 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해도 될 것을 굳이 아이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블로그를 하고, 웹서핑을 즐긴다.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손에서 아이폰을 뗄 줄 모른다.

반면 삼식이의 손에는 언제나 리모컨이 들려 있다. 대형 쿠션에 기대어 캔 맥주를 홀짝이며 즐기는 TV, 바로 이 맛 아닙니까.

▲ SK브로드밴드의 IPTV 서비스 브로드앤TV ⓒSK브로드밴드
원래 삼식이는 케이블TV 이용자였다. IPTV다 뭐다 CF로 부지런히 유혹하는데, 좋아하는 ESPN 등 스포츠 채널이 케이블에 비해 부족하다기에 관심도 안 가졌다. 그러다 케이블TV 약정기간이 끝나갈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지금 IPTV와 인터넷전화를 함께 신청하시면 사은품도 드려요.” 그래, 어차피 스포츠는 인터넷으로 보면 되잖아? 삼식이는 결국 사은품에 눈이 멀어 덜컥 IPTV를 신청하고 말았다.

처음엔 시큰둥하게 여겼는데, 볼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생중계는 아니지만, 프리미어리그(EPL) 경기 하이라이트도 볼 수 있고, 각종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도 챙겨본다. 무엇보다 사랑해 마지않는 〈무한도전〉을 한 번에 몰아서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삼순이와의 연애 초반, 주말 데이트 때문에 보지 못했던 〈무한도전〉을 한꺼번에 10편 이상 몰아서 보느라 하루를 꼴딱 샌 적도 있다.

볼만한 영화도 많다. 최신작인 〈국가대표〉나 〈해운대〉부터 작게 개봉하고 단기간에 막을 내렸던 〈파주〉 같은 영화까지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물론 삼식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는 대부분 유료다. 한편에 3500원이라니, 극장 값의 절반이다. 차라리 1500원 주고 DVD를 빌려볼까 싶지만, 걸어서 15분 거리인 DVD 대여점까지 다녀오고, DVD플레이어 대신 노트북과 TV를 연결하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다.

〈하우스〉나 〈위기의 주부들〉 같은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 시리즈도 챙겨본다. 삼순이와 삼식이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좋아한다. 삼식이는 IPTV로 같이 보자며 꼬드기는데, 삼순이는 굳이 아이폰으로 다운받은 걸 보겠단다. 삼순이는 40분짜리 드라마 한편을 가만히 집에 앉아 보는 게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갈 때 보곤 한다. 반면 삼식이는 네티즌들이 번역한 어색한 자막을 보느니, 시원한 TV 화면으로 편히 보는 게 좋단다.

가끔 집에 들르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리모컨을 끼고 사는 삼식이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럴 때면 삼식이는 ‘TV신문’ 기능을 클릭해 신문을 보거나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는 척 한다. “TV로 공부도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못 믿겠는지 어머니의 표정은 탐탁지 않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삼식이는 홈쇼핑채널에서 바로 옥매트를 구입해 고향집으로 배송해 드리고, 돌아가시는 길의 날씨와 교통상황까지 한눈에 파악해 알려 드린다. 그러고 보니 효자 노릇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어머니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삼식이는 작은 리모컨의 힘을 새삼 깨닫는다.

그런데 언뜻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TV를 ‘바보상자’로 믿던 자신이 리모컨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다. 그러다 다짐한다. 1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삼순이와 밖에 나가 액정 화면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봐야겠다고. 아, 아이폰과 리모컨은 빼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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