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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의 지역이야기]

▲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장
그냥 솔직히 내 한계부터 얘기해야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지역신문의 뉴미디어부는 사실 이런 걸 취재할 수 있는 부서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20일 미국령 사이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이야기다.

이 사건으로 한국인 관광객 6명이 총탄과 파편을 맞아 중경상을 입었지만, 어디에도 책임지는 곳이 없다. 관광객을 인솔해간 여행사는 ‘천재지변과 같은 사고여서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입장이고, 사이판 정부 역시 ‘보상해줄 제도도 없고, 책임도 없다’고 우리나라 정부에 통고했다. 우리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준 것 외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인터넷이나 언론에 호소해봐라’고 말하고 있다.

학원강사 박재형(39) 씨는 총탄과 파편들이 척추를 관통해 사경을 헤매던 중 겨우 한국으로 후송돼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평생 반신불수를 면치 못할 처지다. 가족들은 사이판 정부가 군용비행기를 내줬던 것도 그나마 한국의 방송이 떠들어 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후 그의 치료비만 수천 만 원에 이르지만, 여행자보험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비 한도는 300만 원이 고작이다. 다른 부상자들도 같은 처지다.

▲ ⓒ 김주완
단순비교할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사고보다 일주일 먼저 발생한 부산 사격장 화재의 해결과정은 아주 딴판이다. 그 때 희생된 일본인 관광객들은 부산광역시를 통해 한국정부의 보상금 3억~5억 원을 받게 된다. 부산시가 이 사건의 피해자 보상을 위해 발 빠르게 ‘특별조례’를 만든 덕분이다. 지난 12월 22일 부산시의회를 통과한 이른바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사격장건물 화재사고 사상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 조례’가 그것이다.

지역신문이 다룰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것도 피해자들이 마산을 비롯한 경남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여러 가지 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해외 자국민 보호 프로그램이 아예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악한 현지 의료조건으로 인해 자국민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의료진을 급파하거나 긴급후송대책이 없었고,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 또는 사고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어떤 방안도 없다는 게 밝혀졌다. 또한 여행사의 약관에도 고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범위가 워낙 모호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내부 법률팀까지 갖고 있는 여행사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외여행 1000만 명 시대라고들 한다.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해외여행 사고피해자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 ⓒ 김주완
서울에 있는 신문과 방송이 이 문제를 다뤄주지 않으니 개인블로거와 네티즌들이 먼저 나서고 있다. 사이판 총기난사 문제 해결을 위한 블로거 동맹이 형성되고, 다음 아고라와 네이트 판에 호소와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까지 줄잡아 수십만 명이 신문·방송에도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블로그와 게시판, 트위터를 통해 읽었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한결 같이 우리 정부의 무기력을 질타하고 있으며, 특히 해외 교민들은 자신이 직접 격은 사례를 들어 서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방송이 나서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자국민 보호 프로그램을 비교해보고 해외의 범죄 및 사고피해자 보상제도 현황과 사고 대응 매뉴얼, 여행사의 책임 범위 등을 심층진단해보면 어떨까?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인터넷이나 언론에 호소해봐라’고 했겠는가. 특히 각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PD와 기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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