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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박정남 독립PD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다.”

2008년 4월 말에 내가 만든 방송(MBC <W>)의 타이틀이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식량위기의 최전선에 선 국가들의 현장을 찾아가서 위기의 현재를 보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맡았던 나라는 바로 이번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이티’였다. 며칠 전 아이티의 지진 소식을 접하고 2년 전에 내가 경험 했던 아이티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당시 아이티의 상황은 모든 생필품의 가격이 거의 일주일에 두 배씩 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라 전체가 자가 생산보다는 구호물자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아이티는 국제 식량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아이티에는 정말 황당한 음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진흙으로 만든 쿠키다. 진흙모양의 쿠키가 아니라 정말 채에 거른 진흙에 소금과 마가린을 조금 섞어 그냥 햇볕에 말려서 먹는 쿠키다. 이 황당한 음식을 아이들은 간식으로 먹는다. 그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음식 아닌 음식도 식량위기로 인해 가격이 매주 두 배씩 오르고 있었다.

▲ ‘진흙쿠키’를 먹고 있는 아이티 어린이. MBC <W> 2008년 4월 25일 방송화면.
전 세계의 오지와 험한 곳 취재를 누구보다 많이 한 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티에서 내가 목격한 광경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진흙쿠키라도 사먹는다. 하지만 식량가격이 폭등해 원조가 줄어든 상황에선 빈민들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조그마한 식량 배급만 있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와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빵 한 조각을 향해 몸을 던졌다. 거의 매일 물가 폭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장은 방화로 불에 타서 제 역할을 읽은 지 오래고 그나마 문을 연 가계도 너무나 오른 물가로 인해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이티는 거의 모든 국가 경제를 원조에 의존하는 나라이기에 원조가 끊어진다는 것은 곧 그 국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얘기다. 당시 취재에서 만난 WFP(세계식량기구) 관계자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라는 얘기만 했다. 준비된 식량이 겨우 2개월 치 정도인데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은 준비된 것이 없다고 했다.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귀국해 방송을 했다. 다행스럽게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이후 아이티 사람들을 후원하겠다는 분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이티에는 고난이 끊이질 않았다. 그 해에만 허리케인이 4차례나 아이티를 덮쳤고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지진까지 난 것이다. 이미 사망자가 5만을 넘어 10만 명, 2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약탈, 폭동, 절망이 뒤엉킨 생지옥과 같은 상황이라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찾아 수만 명이 걸어서 옆 나라로 피난을 가고 있다고 한다.

▲ 박정남 독립PD
정말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 것 같다. 그냥 놔둬도 불쌍한 사람들을 어째서 신은 그렇게 모질게 몰아붙이는가...

오늘 평소에 같이 일을 많이 했던 구호단체에 전화를 했다. 1차로 긴급구호를 떠났고 2차로 의료구호활동을 간다고 한다. 같이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해서 돕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이 답답하다. 진흙쿠키 방송 이후에 아이티의 아이들을 후원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움직여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특집 방송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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