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 비판에 동의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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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비판에 동의 못하는 이유
[민임동기의 수다떨기]
  • 민임동기 기자
  • 승인 2010.01.19 00: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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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KBS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제작발표회 ⓒKBS
경향신문 1월18일자 22면

KBS 〈공부의 신〉(연출 유현기, 극본 윤경아)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사교육과 물질주의가 확산되는 내용이 문제라고 하고, 일본드라마 베끼는 KBS가 공영방송이 맞냐는 비난도 제기된다. 〈공부의 신〉과 같은 일본 리메이크작이 각광을 받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한국 드라마 기반이 흔들릴 거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KBS노동조합은 〈공부의 신〉 논란 등과 관련해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공식적으로 문제 삼을 태세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 같은 비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이해하는 부분이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점도 있지만 〈공부의 신〉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은 성급하다.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요인이 〈공부의 신〉에 가해지는 모든 비판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과 ‘욕먹어도 싸다’는 식의 비난은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구분이 없다.

▲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KBS
‘리메이크’와 ‘베끼기’가 같은가 … 용어사용에 신중해야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공부의 신〉과 관련한 논란을 다루면서 제목을 ‘일본드라마 베끼는 KBS 공영방송 맞나’로 뽑았다. 이 제목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다. 리메이크와 베끼기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경향은 〈공부의 신〉을 제목에서 베끼기, 즉 표절로 단정했다. 경향신문이 이걸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기사 본문에서 경향이 〈공부의 신〉을 베끼기로 단정하지 않고 리메이크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 경향신문 1월18일자 22면
만약 경향이 일부 우려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향이 제목에서 ‘무리수’를 둔 이유가 뭘까. 극중 강석호(김수로) 변호사를 통해 뱉어지는 대사 가운데 ‘입시위주 공부’를 강조하는 부분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었기 때문인가. 그래서 〈공부의 신〉 기획의도가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를 설파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하지만 〈공부의 신〉을 학벌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설파하는 퇴행적 드라마로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런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부의 신〉은 그런 점 외에 우리 사회의 ‘꼴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냄으로써 성찰을 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또 교육에 있어 ‘현실과 원칙’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 ‘공부의 신’ 돌풍에는 이유가 있다)

KBS노조의 비판은 과연 온당한가

KBS노동조합의 비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최성원 KBS노조 공정방송실장은 경향신문,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를 그대로 카피한 것 뿐만 아니라 일본 교육사회의 문제점까지도 그대로 우리 교육현실로 대치한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공영방송(KBS)은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방송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또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교육을 통해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것을 몸에 익히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천하대(서울대)를 가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기득권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동안 ‘관변 논란’을 빚은 KBS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할 때 KBS노조가 보인 ‘소극적인 태도’를 감안하면 〈공부의 신〉에 대한 ‘공격적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혹 뉴스나 시사교양보다 드라마가 ‘만만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자문해 보길 권하고 싶다.

또 하나. 이제 5회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아닐까. 예전 글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변호사 강석호(김수로) 못지 않게 병문고 한수정(배두나) 선생은 〈공부의 신〉에서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다. 강석호 변호사와 한수정 교사는 ‘꼴통인생들’을 방관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범주에서 일정하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를 두고 대립한다. 강석호가 명문 천하대 입학을 통한 전통 입시위주의 방식을 선호한다면, 한수정은 이른바 ‘참교육’의 현장실천을 가치관으로 가지고 있다. 거칠게 말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립인 셈이다.

캐릭터와 드라마적 장치는 과정일 뿐 …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 제작발표회 ⓒKBS
18일 방송에서 약간 언급이 됐지만, 강석호와 한수정은 배척이 아니라 경쟁과 상호협력을 통해 ‘꼴찌들’에 대한 교육을 이끌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강석호식 주입식 교육’은 ‘한수정식 인간교육’과 병행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강석호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새겨들을 부분은 있다고 본다.

둘 중 어떤 방식이 옳은지 그리고 학생들을 위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예전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기존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체제에서 ‘성공’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강석호의 주입식 교육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잘난 인간들’의 ‘출세’가 아니라 ‘밑바닥 인생’들의 ‘사람 만들기’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의 교육방식이 옳은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선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정리하자. 〈공부의 신〉은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천하대 특별반’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릴 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는 상황. MB 교육정책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점도 이해하지만 캐릭터와 드라마적 장치는 과정일 뿐 아직 〈공부의 신〉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강석호식 교육법을 ‘꼴찌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지 여부는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부의 신〉은 생뚱 맞은 대사로 ‘시위대를 부당하게 묘사한’ 〈수상한 삼형제〉와는 비판의 맥락을 달리해야 한다. 지금 〈공부의 신〉에 대한 비판은 부당한 측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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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2010-01-19 01:29:25
비판받을 부분이 없지 않은 드라마이지만 기자님 말씀대로 지금의 비판은 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균형잡힌 기사 많이 써주세요

동의 2010-01-19 01:21:05
드래곤자쿠라에서 변호사가 마지막에 그럽니다,공부만이 길이아니라 너희들이 생각하는 모든길이 정답이라고,,,,,,,,비판하려면 끝까지보고 비판해도 늦지 않습니다.
유승호역역을한 야마삐는 마지막에 동경대합격했으나 학벌이 필요없다고 사법시험공부합니다. 스스로 못했지만 누군가 고등학교시절 나에게 목표와 동기부여를 해줬으면 (김수로처럼)하는 마음을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목표가 공부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동의 2010-01-19 01:15:33
균형잡힌 시각이십니다.
기타 매체는 공신이 주입식교육을 강조하는 듯이보이고 학벌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색안경 끼고 봅니다. 그러나 원작인 드래곤자쿠라에서도 국어수업이 진행되면서 주입식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으로 넘어 갑니다. 실력이 없을땐 주입식이 중요하지만 실력이 쌓이면 스스로 생각할수있는 능력이 생기니까 그렇게 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