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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배선경 통신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분주한 1월에 용감히 ‘굿바이’를 외친 스타가 있다. 주인공은 BBC의 인기 진행자인 조나단 로스. 로스는 지난 7일, 재계약을 위한 논의 없이 BBC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BBC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조나단 로스는 인기 토크쇼인 <프라이데이 나잇 쇼>를 비롯하여 영화 리뷰 프로그램, BBC라디오2의 음악방송을 진행해왔다. 이 프로그램들은 고정 팬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들일 뿐 아니라 프라임 타임에 편성된 BBC의 핵심 엔터테인먼트 쇼라는 점에서 조나단 로스의 사임은 BBC에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 조나단 로스(Jonathan Ross) ⓒBBC

조나단 로스와 BBC는 약 13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한 프리랜서 방송인이 한 방송사에서 십 년 이상 계약을 지속했다는 것은 분명 둘 사이에 ‘윈-윈’ 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프로그램 자료 조사원이었던 조나단 로스는 BBC라는 화려한 무대를 통해 이 시대 최고의(가장 비싼) 진행자가 되었다. BBC 또한 조나단 로스라는 타고난 엔터테이너를 얻음으로써 ITV에 추월 당하던 라디오 시청률을 한껏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일명 최고와 최고가 만나 업계의 평정(?)을 시도한 셈이다.

하지만 둘의 윈-윈 관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경기침체를 이유로 고용인력을 줄이고 프로그램 제작비를 대폭 삭감한 BBC가 조나단 로스에게 연간 약 6백만 파운드(한화 약 120억)를 지불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BBC는 여론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조나단 로스의 거친 입담이 자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그의 몸값은 때마다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BBC가 언제나 역점을 두는 기본 철학 중 하나는 방송의 창의성이다. 수신료를 독점하는 만큼 공영 방송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동시에 어느 누가 시도한적 없는 가장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방송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나단 로스라는 방송인은 BBC가 추구하는 창의적 가치에 잘 부합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미 유명한 스타, 영화, 음악들도 그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면 낯설고 흥미롭다. 진부한 상식을 늘어놓지 않으면서도 허를 찌르는 타고난 입담은 조나단 로스표 엔터테인먼트 쇼를 탄생시켰다. 조나단 로스가 흘린 말들 때문에 매번 진땀을 빼면서도 BBC가 그를 보호했던 이유는 로스의 독창적 가치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나단 로스가 먼저 ‘안녕’을 외쳤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이후 BBC 또한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라디오 프로그램마저 사전녹화를 통해 감시를 당하고 있는 조나단 로스는 이제 BBC를 떠나야 할 때임을 직감한 것 같다. 이유야 어찌됐건 BBC는 터무니없이 비싼 출연료를 지불한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으며 조나단 로스의 입 단속까지 해야 하는 이중고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방송과 스타의 만남과 이별은 반복된다. 그들의 속사정이 복잡하든 말든 우리가 기대하는 건 냉정하게도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고 신선한 그러나 여전히 유쾌한 웃음. 계약이 만료되는 6개월 후 조나단 로스와 BBC는 어떤 새로운 쇼를 들고나와 우리를 웃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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