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무죄에는 동어반복
<PD수첩> 무죄 판결에 조중동은 ‘격분’했지만 검찰의 기소 내용 이상의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 이밖에도 정정보도 소송을 다룬 민사재판과 ‘허위 사실’ 여부를 일일이 비교하거나 “전국을 혼돈에 빠뜨렸는데 허위사실이 아니라니 …”(조선 1월 21일 3면) 등의 반응을 담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또 세 신문이 빠트리지 않은 것은 번역자 정지민 씨 인터뷰였다. 정 씨의 진술은 검찰과 조중동의 ‘<PD수첩> 때리기’의 주요 논거로 활용돼왔다. 그러나 무죄를 선고한 형사 재판부는 정지민 씨 진술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의 일부 오역까지 지적했다.
개연성 없는 ‘우리법연구회’ 마녀사냥
<PD수첩> 판결 이후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법원을 향해 겨눈 창끝에는 ‘우리법연구회’가 있다. 진보성향의 판사들의 학술연구모임으로 알려져 있는 이 조직은 마녀사냥의 표적이 돼 연일 해체 압박을 받고 있다.
조중동의 논리는 이렇다. <PD수첩> 제작진 무죄 등 논란이 된 판결은 판사들의 ‘이념적 편향’ 때문이다. 이런 판사들이 단독결정을 내리니 ‘문제 있는’ 판결이 나온다. 이런 ‘튀는 판결’의 중심에 우리법연구회가 있다. 그러니까 해체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PD수첩> 무죄판결의 불똥은 우리법연구회 해체와 법원 개혁으로 튀었다. 하지만 정작 최근 논란이 된 사건을 맡은 판사들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마치 최근 잇따른 시국선언 무죄판결도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주도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조선은 22일 사설에서 강기갑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PD수첩> 무죄 판결을 차례로 언급하고 “우선 일련의 문제 판결과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법원 내 사조직 우리법연구회를 그냥 내버려둘지 어쩔지에 대해 대법원이 최고 법원으로서의 판단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이후 보도부터는 우리법연구회 해체 여론이 기정사실화 됐다.
중앙도 같은날 사설을 통해 “일련의 판결에 집단적 편향이 느껴진다. 논의의 중심에 우리법연구회가 있다”며 중앙도 우리법연구회는 비록 억울하더라도 자진 해체하는 게 순리”라고 지적했다.
동아는 “이들 판사 3명은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은 아니다”라고 ‘쿨’하게 인정했다.(25일치 사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법연구회가 이번 파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며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는 전체의 5% 남짓인 120여 명이지만 이들의 진보적인 재판 활동이 다른 젊은 판사들의 판결 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법조계에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은 조중동이 주도?
최근 일련의 시국사건 무죄판결 이후 조중동은 검찰, 한나라당과 함께 연일 사법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조중동은 끊임없이 법원을 공격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여권의 ‘사법부 개혁론’에 힘을 싣고 있다.
여론의 공세에 대법원은 실제로 형사단독 재판부를 경력 10년차 이상 법관이 맡도록 하는 등 개편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조중동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의 개혁안을 제시하며 ‘사법부 길들이기’에 매진했다.
조선은 25일자 <‘우리 법 연구회’와 ‘너희 법 연구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법원이 법원 내 일부 판사 서클인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요구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