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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조민준 〈한겨레〉 ‘ESC’팀 객원기자

▲ MBC 월화 미니시리즈〈파스타〉

드라마 비평은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 드라마 잡지를 만들었고 여전히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이처럼 미처 지어지지도 않은 밥에 숟가락을 꽂으려다 흔한 말로 ‘낚인’ 경험도 간혹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드라마가 끝난 후 여유롭게 차근차근 돌아보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지만, 그런 기회는 작품의 사회·문화적 파급효과가 상당하지 않은 한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장르의 특성에 비롯된 이유가 크다.

그런 까닭에 결말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드라마를 비평할 때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야 마땅하다. 단순히 만듦새의 수준을 논하는 게 아니라 세계관을 읽고자 함이라면 더더욱 엄격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헌데, 어차피 결말도 모르는 채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오히려 드라마 비평은 쉽다는 인식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일회성 엔터테인먼트이니 즉물적인 비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까? 최근 두 편의 월화드라마를 둘러싼 미디어와 평론가들의 설왕설래를 보자면, 드라마와 그 비평 문화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얼마만큼은 진실인 듯하다.

첫 번째 사례. MBC 월화 미니시리즈 〈파스타〉에 대해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미디어오늘〉에 쓴 평론에서 ‘최악의 노동현장을 그린 노동지옥 드라마’라는 요지로 비판했다. 그가 위법의 구체적인 예시까지 들며 지적한 팩트들은 대부분 옳다. 최현욱(이선균)이 셰프로 있는 주방에서는 현재까지 기절초풍할 성차별적 노동탄압이 일어났고 김산(알렉스)의 어떤 대사는 충분히 성희롱이라 불릴 만했다.

문제는 최현욱과 김산 캐릭터의 비윤리적이고 위법적인 언행이, 어떻게 ‘위법하고 비윤리적인 드라마 〈파스타〉’라는 결론으로 직결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영화평론에서는 어느 한 대사, 어느 한 설정, 어느 한 캐릭터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 작품의 세계관을 예단하지 않는다.

그런데 텔레비전 드라마 비평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다. 〈파스타〉가 결국 최현욱의 남성우월적이고 위법적인 세계관을 옹호하는 작품이었다는 결론은 드라마가 끝난 후에 내려도 늦지 않거니와, 이런 류의 로맨스 드라마 공식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런 결론과 함께 드라마가 최종회를 맞이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던 최현욱의 호언장담은, 아직 절반에도 이르지 않은 시점에 이미 깨져버렸지 않은가.

▲ KBS〈공부의 신〉

어느 한 단편만을 놓고 이루어지는 침소봉대는 두 번째 사례, 〈공부의 신〉에 쏟아진 비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드라마의 흥밋거리 중 하나는 즐거운 학교를 꿈꾸는 한수정 선생(배두나)과 엘리트주의자 강석호 변호사(김수로)의 가치관 충돌이다. 최후에 누가 승리할 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언론들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듯 말한다. ‘입시 과열을 미화하고 사교육을 정당화하는 드라마’라고. 이 또한 최초의 설정, 캐릭터, 대사 몇 마디만을 보고 드라마의 세계관을 예단하는 버릇에서 나왔다.

▲ 조민준〈한겨레〉‘ESC’팀 객원기자

심지어 〈경향신문〉은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말을 빌려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자칫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될’까 우려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현실의 문제를 두고 손쉽게 대중매체를 희생양으로 삼는 습성. 이제 드라마의 PD와 작가들은 자기검열이라도 해야 할까? 모두들 입을 모아 볼만한 한국 드라마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만큼 성의 있는 태도로 접근하는 이들 또한 무척 드물다.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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