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미화? 인본주의 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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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미화? 인본주의 의사 이야기!”
[인터뷰]홍창욱 SBS 〈제중원〉 PD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0.02.02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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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 드라마 경쟁이 치열하다. KBS 〈공부의 신〉이 저만치 앞서 있지만, 2위 다툼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가운데 장르부터 전혀 다른 MBC 〈파스타〉와 SBS 〈제중원〉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벌이는 2위 경쟁은 그래서 흥미롭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청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실제 드라마 촬영 현장은 그리 한가하지 못하다. 경북 문경과 용인, 포천 등지를 오가며 조선 개화기 풍경을 담기 바쁜 〈제중원〉(극본 이기원, 연출 홍창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난달 30일 오전 일산제작센터에서 만난 홍창욱 PD는 ‘감독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겨를도 없이 분주했다. 그는 “시대극인데다 수술 장면이 많다보니 미술부분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 지난달 30일 일산탄현제작센터에서 '제중원' CG 장면을 위한 촬영이 진행됐다. 한혜진의 연기를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는 홍창욱 PD(가운데). ⓒPD저널
조선 최초의 근대식병원을 배경으로 한 메디컬사극 〈제중원〉은 SBS가 올해 10대 기획의 하나로 야심차게 선보인 작품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시청률 1위는 〈제중원〉의 몫이 아니었다. 14~15%대의 시청률로 선전하고 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홍 PD 역시 “아쉽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시청자들의 판단이니, 내가 뭐라 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제중원〉은 구한말 병원사를 중심으로 한 의학드라마이자 시대극이다. 이종 장르의 결합이나 구한말이라는 ‘사극의 블랙홀’을 다루는 작업 모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홍 PD는 특히 “근대사를 다루다보니 딴죽 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드라마 초반 일본인 의사 와타나베 묘사를 두고 불거졌던 친일 논란이나 제중원 초대 원장 알렌 미화 논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와타나베는 신민화 정책에 앞장 서는 인물로 그려지고, 알렌도 처음엔 의료 선교를 목적으로 왔다가 나중에 변모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나쁜 놈’이라고 자막을 넣을 수는 없지 않나. 우리 드라마의 목적은 알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황정(박용우)이 의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제작발표회에서 제중원 의생복을 착용한 홍창욱 PD. ⓒSBS
〈제중원〉에 관한 또 다른 논란은 ‘잔인하다’는 것이었다. 주로 초반에 등장한 도살 장면이나 수술, 해부 장면 등이 끔찍하다는 지적이다.

“첫 회에서 소를 내려치는 장면 같은 경우 사실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고, 플라스틱 망치로 내려쳤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를 죽였다고 했다. 딱 그 장면만 보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 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정이 소를 잡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를 꺼낸다거나 할 때 시청자들이 불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기들은 모두 제작해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에 따르면 〈제중원〉에 등장하는 수술 장면들은 대부분 ‘방송용’으로 순화된 것이다. 그는 “당시 제중원 사진을 봤는데, 정육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대로는 방송 못 내보낸다”고 말했다. 물론 수술 장면에 관한 고증은 연세대 의료진의 감수 아래 철저히 하고 있다. 홍 PD는 “의학박물관에 보관된 당시 의료 기구들을 본떠서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중원〉에서 주목할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가 중인의 딸로 태어난 석란(한혜진)이 남녀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백정 출신의 황정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는 것이다. ‘훌륭한 의사’에 대해 홍 PD는 “돈이 없다고 환자를 내치지 않는, 생명을 우선시 하는 인본주의자 의사”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는 드라마를 통해 시대와 제도의 모순 속에서도 올곧은 사람이나 가치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사교육 세태를 풍자한 〈강남엄마 따라잡기〉나 “약자를 보호하는 판관으로서의 초심”을 역설한 〈신의 저울〉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사회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얘기에 관심이 많다”며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로 〈서울의 달〉을 꼽는다.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한데, 남자 나이 40대는 비겁해도 좋을 나이라고 하지 않나. 출세를 위해 불의를 참으면서 비겁해진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용감한 사람들은 철퇴를 맞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민주화의 초석도 닦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을 그리는 게 좋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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