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이 말하는 언론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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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이 말하는 언론의 조건
[인터뷰] 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
  • 원성윤 기자
  • 승인 2010.02.07 17:4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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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 모델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70년 가을, MBC에서였다. 그 후로 40년 동안 수많은 앵커가 거쳐 갔지만, 앵커는 뉴스전달자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TV 화면 너머의 진실, 뉴스 뒤의 뉴스’를 표방하며 나온 앵커 신경민은 그간의 앵커와는 달랐다. 미디어, 정치, 국제, 사회 등 보도의 배경이 된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한 그의 ‘클로징 멘트’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그가 2007년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의 광장〉과 387일간 진행한 〈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를 통해 한국사회를 촘촘하게 평론한 내용이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에 담겨 있다. 책을 낸 신경민 앵커를 지난 4일 만났다.

-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 책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언론인으로 종사하면서 겪었던 일, 기사 쓰면 깨달은 것을 뉴스에서 클로징멘트로 말했다. 여기에는 1970년대 학생 때부터의 가져온 한국사회의 문제와 배경, 뿌리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었다. 진단을 했지만, 완치는 불가능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치료를 해야 재발 방지를 할 것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점, 지도자의 요건, 사회적 시스템, 현 관행의 잘못된 점과 개선방향 등 40개 정도의 주제로 분류했다.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 ‘말하는 앵커’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1970년대 시작된 한국의 앵커는 미국의 겉모양만으로 베껴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앵커에 대한 구체적인 권한과 책임을 규정짓는 구체화 작업이 뒤따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미국 앵커들의 권한은 세다. 상대방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 앵커가 정색하고 달려든다. CBS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이스라엘과 아랍 분쟁을 중재한 것이나 ‘월남은 돌려줘야 한다’며 존슨 대통령의 재출마를 막은 일화는 유명하다. 앵커가 그 정도의 힘과 판단은 있어야 한다. 제가 그 시늉을 내본다고 했는데, 그 시늉도 못 봐주겠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 1981년 입사 이후, 간부들과 갈등을 겪으며 여러 차례 보직변경이 됐는데.

“그동안 10번 정도 쫓겨난 것 같다. 일관되게 주장해온 원칙 때문에 스스로 불러들인 게 많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 경호실에 불려갔다. 지금은 코미디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심각했다. 이후 회사에서는 나를 5년 연속으로 국제부 내근근무를 지시했다. 젊은 기자가 내근만 해야 됐으니, 당시로서는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근하면서 영어공부를 했고, 인격 수양도 하고, 리포팅 연습도 했다. 서울에 있는 외국공관과 접촉하면서 1989년에 미국 의회 펠로우십을 떠났다. 인생은 짧게 보면 불행인거 같아도, 길게 보면 또 다른 것 같다.”

- 1993년 초에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했다.

“10년 차 기자를 넘겼을 때였다. 경험도 일천했다. 그때에도 앵커 멘트를 간간히 했는데, YS의 아들 김현철 씨에 대해 얘기를 했다. 당시 현철 씨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는데, 뉴스 리드멘트에 얘길 했다. YS 민주계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통보 없이 물러나게 됐다.”

- 클로징 멘트 작성을 위해 의문 나는 것은 직접 취재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는데.

“기자실 분위기나 개인의 평가를 물어본다. 기자에게 틀린 것은 지적해주기도 하면서 모르는 것은 묻기도 한다. 현장의 팩트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가진 인상은 편견일 수도 있으니까. 신선하면서도 오래된 객관적인 관찰과 지혜가 담겨야 된다.”

- 클로징 멘트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꼽자면.

▲ 신경민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 ⓒMBC
“잃은 것은 자리와 시니어(Senior, 고참)들, 얻은 것은 시청자와 젊은 기자들이다. 시청자들은 명품 저널리즘에 열광했고, 사내 젊은 기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보도국의 인물이었는데,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하지만 저를 반대하던 시니어 기자들과의 인간관계와 신뢰는 끊어졌다. 그들은 저를 보고 사고치는 것을 멈추게 했다고 말했다. 선후배로 몇 십년간 같이 지내왔지만,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게 됐다.”

- 전주출신이고, 정동영 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늘 오해를 받지 않나.

“최문순 사장 때 MBC 안에서 특혜를 받았거나, 정치권에 뛰어 들었다면 기회주의자고, 성향이 그렇다는 비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DJ 정부와 참여정부 지난 10년 동안 특혜는커녕 저는 변함없이 비판적인 스탠스를 가졌다. 회사 밖에서 그러는 것은 호남 출신이니까, 인상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겠냐.”

- MB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를 내리자면.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법은 세계가 근·현대를 겪으면서 사회의 기본 원칙과 지혜를 녹인 것이다. 목적과 결과만 좋은 것은 틀린 것으로 판명난다. 독재가 그 중의 하나다. 전쟁과 독재, 부패가 같이 갈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법 절차를 무시한다는 것은 무법천지로 가겠다는 것이다.”

- 김은혜 대변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BBC 인터뷰의 발언을 바꿔 브리핑 하는 일이 생겼다. 이동관 대변인이 이를 ‘마사지’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청와대가 수차례 문제에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렇게 원칙에서 벗어난 일을 다반사로 해왔다는 게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게 김은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최초 여성 대변인이었던 디디 마이어스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만 줬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쫓겨났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큰 사안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한다.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 신경민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은.

“언론은 상법상의 회사지만 헌법적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민주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래서 좋은 언론을 가져야 한다. 좋은 언론이 없는 게 우리 사회 큰 문제다. 이는 좋은 언론 사주가 없다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매체 환경과 기술, 라이프스타일이 매체를 바꾸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저널리즘 구현은커녕 종편채널 도입 등 엉뚱한 걸 고민하고 있다. 회사 내 리더십은 존재감이 없고, 외부환경은 나빠지고, 비즈니스 그라운드는 지진 맞은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 답답하다.”

- 정년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정치보다는 언론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좋은 언론인들이 집합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 사회적 토양이 갖춰지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좋은 언론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이 나타나서 같이 하자고 하면 좋겠다. 이런 소망을 가진 기자, 학자, 정치인들이 꽤 있다. 신문, 방송, 통신을 결합한 비즈니스 그라운드가 갖춰지면 해볼 만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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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은 2010-03-01 16:41:54
매일유업 남양유업

김연아 2010-03-01 16:40:42
로지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채나리 2010-03-01 16:39:36
김기랑,김민수,채나리,임유진,최다움

채윤지 2010-03-01 16:38:37
박규리/니콜/한승연/구하라/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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