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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의 "친구"

|contsmark0|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contsmark1|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contsmark2|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contsmark3|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contsmark4|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contsmark5|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contsmark6|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contsmark7|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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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contsmark10|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contsmark11|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contsmark12|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contsmark13|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contsmark14|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contsmark15|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contsmark16|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contsmark17| -김민기 작사·작곡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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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그저 문학적 수사나 치기로 간주하지 않길 바래. 난 지금 술에 절어 있지도 않고 더구나 대마향에 취해 있지도 않으니까. 스무 살 전에 나는 죽었고 그 후로 오래도록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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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식스 센스"라는 영화 본 후로 더 그래. 나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여기저기 휘젓고 부딪치며 소리를 내고 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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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내가 이해 못했던 일들이 실은 그 살아있는 자들이 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늘 무서운 건 아냐. 때로는 살짝 지옥문을 빠져 나와 천국 근처도 기웃거리다가 그리운 얼굴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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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오늘은 그 애를 만났어. 교내백일장이 있던 날. 근처에 배밭이 있었는데 일년 후배인 요섭이가 나에게 먹던 배를 디밀며 “형 이런 노래 알아요?” 하는 거야. 라디오를 끼고 살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가락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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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친구’. 나직이 부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싸 하는 거야. 한 입 베어 문 배를 떨어뜨리고 말았지. 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꽃잎이 떠다니고 기차가 움직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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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어떤 노래는 처음 들을 때 천장이 일시에 내려앉는 것 같거든. 바로 그 노래가 그랬어. 가사를 적어 달래서 부르고 또 불렀지. 노래를 지어 부른 이의 이름도 알아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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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김.민.기. 그때부터 그를 형이라 부르기로 했어. 허락도 안 받고 말이지. 그냥 그를 사모했던 거야.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선 더 빠져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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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형이 고등학교 때 보이스카우트였는데 야영 갔다가 배타고 오는 길에 친구 하나가 바다에 빠졌대. 모두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 그 친구는 물 속에 잠기고 만 거지. 슬픔과 죄의식으로 형은 괴로웠던 거야. 나도 비오는 바다와 마주한 적이 몇 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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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8|그때마다 이 노래가 내게 초혼가였지. 입대하기 전날도 그랬어.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그 날 비로소 난 비와 친구가 되었어. 우산을 모랫바닥에 처박았거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우산으로 가리던 시절이 부끄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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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살면서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 많았거든. 하고만 싶었지 실은 못했다는 얘기야. 그때마다 친구를 하나씩 죽이는 기분이었어. 나는 모두 몇 명의 친구를 죽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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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내가 중학교 선생 할 때야. 소풍 때 애들 앞에서 ‘친구’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가르치는 2학년 5반 부반장 애가 수줍은 얼굴로 다가오는 거야. “선생님 그 노래 좋아하세요?” 묻더군. “물론이지” 라고 대답했더니 걔가 뜻밖의 말을 했어. “그 노래 우리 외삼촌이 만든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contsmark55|그 애 이름이 일규였어. 그 후로 걔가 달리 보이더라. 왠지 조심스러워 지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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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8|그 후로 형의 소문이 가끔 들렸는데 온통 우울한 얘기야. 공장에 갔다고도 하고 농사를 짓는다고도 하고. 감옥에 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어. 어쨌든 나하고는 다른 세상을 택한 형이 자랑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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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1|방송국에서 형을 본 건 어느 여기자 덕분이었어. 무지 떨면서 나는 대뜸 “존경합니다 연구하고 있습니다” 했어. 그랬더니 형은 착하게 웃으며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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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4|그 후로 형이 혜화동에 일을 벌이면서 여러 번 찾아가 괴롭혔지. 물론 술도 몇 번 마셨구. 형은 내가 진심을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였어. 형의 눈엔 그저 방송국에서 왔다 갔다 하는 놈들 중에 하나였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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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7|얼마 전 지하철 일호선 십주년 기념공연장에서 뜻밖의 일을 당했어. 어느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았는데 계속 내게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어. 그 할머니 기어이 쉬는 시간에 내게 말을 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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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0|“저 일규 엄마예요.” “예? 일규라구요?” 그 분은 민기형의 큰누나였던 거야. 형은 십 남매 중 막내인데 누나만 아홉이었거든. 일규 어머니 참 곱게 늙으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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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3|(친구라는 영화가 난리라는데 나도 자꾸 친구가 그리워져. 요섭이는 무얼하고 있을까. 소문으로는 목사님이 되었다는데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배밭에 다시 가서 노래 부르자면 미쳤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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