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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음악한담]

▲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장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에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생긴 이후 벌어진 가장 놀라운 광경이다. 아이돌 그룹과 그 그룹의 팬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9월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난 2PM의 리더 박재범과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재범의 소속사인, 아니 소속사였던 JYP 엔터테인먼트가 밝혔다.

이유는 그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 다만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잘못이 무엇인지는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충격을 받은 2PM의 팬들은 ‘재범 마케팅’으로 정상에 올라간 그룹이 이제 와서 멤버를 내친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남은 멤버들과 팬들이 간담회까지 열었지만, 간담회에서의 흉흉한 분위기와 재범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과연 그 ‘심각한 사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멤버들과 친분이 있다는 둥 기획사 사람과 친분이 있다는 둥 하면서 상황을 그럴듯하게 꿰어 맞췄던 글들이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넷 위를 떠돌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사실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중 많은 것은 재범의 그 사생활이 무엇이었는지, 그게 있기는 있는 것이었는지 밝혀진다 하더라도 진위를 알 수 없을 것이다.

▲ JYP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PM' 사진. 재범이 빠진 6명이다. ⓒJYP엔터테인먼트

오히려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돌의 팬덤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다. 이는 상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환상 속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실상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환상 그 자체다. 환상이라는 틀이 깨지지 않는 이상,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도, 사실은 ‘심각한 사생활’이 들어가도 문제가 될 게 없다.

팬들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킨 아이돌에 대해 친다는, 이른바 ‘쉴드’는 그 환상의 두께를 달리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돌들을 키우는 한국의 기획사들은 환상의 벽을 굳건하게 둘러싸는 데 전심전력을 다 해 왔다. 그리고 이제, 외부의 경쟁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굳건하게 지었던 환상의 벽이 역설적으로 감옥이 되어 기획사와 멤버들을 포위하고 있다.

환상이 감옥이 되는 것과 더불어 음모론이 발생한다. 음모론은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합리적으로 통합할 수 없을 때, 즉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특정 주체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고 치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즉 모든 걸 알지만 아무 것도 모를 때 동원하는 것이 음모론이다. 여기에는 ‘절대 악’이라는 주체와 ‘선한 희생자’가 자리한다. 이 경우 선한 희생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절대 악은? 어쩌면 이 음모론의 주체는 사실 JYP의 수장인 박진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재범이 마이스페이스 사건으로 탈퇴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감상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사과문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구탈퇴’에 대한 공지문은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작성했다. 그럼으로써 비난의 초점은 그를 ‘배신’했다고 비난받는 멤버들에게로 옮아가고 있다.

마치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획책한 것인 양. 인터넷에는 멤버들이 예전부터 재범을 왕따시켰고, 그가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떠돌고 있다. 이걸 ‘신의 한 수’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산업의 생리’라 일컬어야 할지는, 글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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