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에서 ‘추노’까지… 반역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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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에서 ‘추노’까지… 반역을 꿈꾸다
[PD의 눈]
  • 김욱한 포항MBC 제작팀장
  • 승인 2010.03.03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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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어감은 분명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시청률 경쟁의 최선봉에 서있는 장르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청자들을 TV라는 바보상자 앞에 묶어두는 중독성을 끝없이 발휘하게 만드는 임무를 자청타청으로 부여받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정권과 기득권 세력의 안위까지 책임지는 ‘수상한(?)’ 역할까지 자임하고 나섰으니 이런 비판적인 시각이 근거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한국 드라마에 쏟아지는 모든 비판과 편견에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추노〉 때문이다. 드라마의 희망을 여기서 봤다고 한다면 나는 〈추노〉의 광팬을 자청하는 것일까?
이런 느낌과 고민은 사실 〈추노〉 이전에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추노〉를 마주하면서 든 생각은 〈모래시계〉를 볼 때, 그리고 〈모래시계〉 이후의 한국 사회의 변화를 체험할 때 느꼈던 긍정적인 희망의 감정과 닿아있다.

아마도 김종학 PD의 연출과 송지나 작가의 구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분야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5·18 광주를 다룬 부분일 것이다. 극 중 최민수가 겪었던 광주사태(당시엔 그렇게 불렀다)를 결코 길지 않은 에피소드로 국민들이 간접 체험하던 그 경험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지를 그 당시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광주청문회를 거치면서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광주의 진실을 시각적으로 감성적으로 실감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로 실체성을 가지고 생생히 전해진 것이다. 그 후부터 광주는 다시 부활하고 국민들은 광주의 진실과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두 전직 대통령의 사형 선고까지 이끌어 내면서 역사적인 변곡점을 만든 것이다. 이게 바로 그 어떤 문학 작품이나 보도 기사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힘이리라.

물론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작가와 PD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작진의 손을 떠난 드라마는 그 자체의 생명력과 존재감을 가지면서 시청자와 사회와 역사와 부딪히고 길항하면서 또 다른 현실의 ‘드라마’를 만들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후적인 결과물이지만 〈모래시계〉의 위대성은 거기에 있었다.

1995년의 〈모래시계〉를 거쳐서 2010년의 〈추노〉를 보면서 또다시 희망과 반역을 슬며시 꿈꿔본다. 사극의 초점을 궁궐에서 저잣거리의 밑바닥 인생과 노비들에게로 끌어내린 작가와 PD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어찌 보면 〈추노〉는 조선 시대 모든 ‘서발턴’들의 종합 소개 안내서이자 그 서발턴들이 저항하고 투쟁해왔던 위대한 반역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 김욱한 포항MBC 제작팀장

그럼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답은 이미 여러분들에게 있다. 조금만 눈치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그 노비들이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고, 돈의 노예가 된 추노꾼들도 득시글거리고 있고, 권력에 빌붙어 한 세상 누리려는 좌의정도 있음을 알 것이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 것이다. 세상을 바꿀 것인가? 허위의식 속에서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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