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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비디오 … 복음(福音)인가 주문(呪文)인가
소형경량 고화질로 생방송수준의 화면 VS 선정적 소재주의와 노동강도 강화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 승인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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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6밀리 디지털 카메라. 소형에 가벼울 뿐더러 조작이 상대적으로 쉽고 고화질을 보장하는 이 카메라는 pd가 직접 촬영에서부터 제작 전과정을 담당할 수도 있게 했다. 최근 좥mbc 다큐스페셜-신생아병동 25시좦를 비롯해 몇몇 프로그램은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pd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프로듀서연합회보는 지난 118호(97.5.16)에 실린 프로듀서간담회 ‘디지털 카메라 시대의 의미와 전망-새로운 기술은 제작시스템과 의식의 변화를 부른다’를 통해 이 새로운 제작방식의 의미와 전망을 살펴본 바 있다. 이 글은 위 좌담기사를 접한 필자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해 우려되는 측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자 기고한 글이다. <편집자>
|contsmark1|97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일본의 영화 혹은 방송 기술 잡지들에서는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번째는, 그동안 하이 8미리나 s-vhs를 주제로 해왔던 홈 비디오 관련 잡지들이 대부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dv(digital video)로 화제를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시장 점유율에 있어서도 dv는 1995년말 이후 폭발적으로 수요증가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dv 카메라의 선두주자로 나선 소니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두번째 현상은 더욱 이채롭다. 뉴 미디어의 수렴 현상(convergence)이 이러한 잡지들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홈 비디오 잡지들은 갑자기 고화질의 작업을 저예산으로 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고 있고, 멀티미디어에 기반한 디지털 비디오 잡지들은 ‘진짜’ 디지털 비디오(dv)에 관해 지면을 할애하기 시작했으며, 방송 기재 전문 잡지들 역시 고효율과 비디오 저널리즘의 도입이라는 관점으로 dv 테크놀로지의 변화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들이다. dv는 분명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으니까.
|contsmark2|1. 상황그러한 지각 변동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dv는 “비디오가 등장한 이후 언제나 있어왔던 계급분화, 곧 업무용 기재와 홈 비디오의 엄청난 격차를 심하게(?) 좁혀버렸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 구체적인 양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첫번째, 소형 경량 고화질 카메라의 등장이다. 현재 나오고 있는 dv 핸디캠은 신호처리 방식이 디지털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 발전이 접목되면서 ‘생방송 수준’(live broadcasting quality)의 화질을 보장한다. 그리고 경량화된 6.35미리 테이프를 사용하기 때문에 카메라 또한 경량화가 가능하며, 특히 ic 칩이 내장된 테이프를 사용할 경우 촬영 당시의 노출, 셔터 스피드 등 기술적 지수들이 모두 기록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정도의 화질에 디지털 사운드가 결합된 카메라의 가격이 캠코더의 경우는 1백∼2백 만원대, eng의 경우 1천∼2천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두번째, 비선형 저가 편집 시스템의 등장이다. 물론 비선형 편집 시스템은 카메라의 디지털화 이전부터 이미 등장했으나, 그것은 언제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로 변환해서 디스크상의 비선형 편집을 한 후 다시 아날로그로 출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9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dv 신호 처리 보드에 의해, 이제 디지털 베타캠 이후로는 최초로, 기록과 편집의 양 시스템이 화이어와이어(firewire)라는 디지털 전송 방식에 의해 연결됨으로써 본격적인 저예산 디지털 제작 과정이 구현되고 있다. 이것은 저가의 dv 카메라가 고가의 아날로그 카메라를 그 효과면에서 능가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결국, 비디오의 계급분화는 이미 좁혀지고 있으며, 아울러 멀티미디어에 기초한 기술적 발전이 비디오의 기술적 진전과 결합됨으로서 시너지 효과는 증폭되고 있다.
|contsmark3|2. 소규모 제작 시스템의 대두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사회 각 부분의 영상 제작 주체들에게 다양한 파급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선, 그동안 어렵게 꾸려왔던 독립영화와 시민의 제작 참여 활동은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되었다. 곧, dv는 독립 제작물의 질적 제고를 위한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했고, 나아가 시민 제작 참여의 결과물을 네트워크함으로서 새로운 방송의 양식과 구조를 창출할 가능성을 제공했다.전문 제작 방식에도 변화는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 및 일본의 경우는 이미 hi-8 3ccd 카메라의 출현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러한 소규모 제작 방식에 기초한 보도 중심의 채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특기할 또다른 사항은 필름 제작의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시도되던 비디오에서 필름으로의 전화과정은 dv의 출현과 함께 유력한 원군을 획득했고, 그 결과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과 미국의 수많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그동안 아껴왔던 16미리 카메라를 던지고, dv로 재무장한 채 극장 개봉을 목표로 촬영에 열심이다. 이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예술적 창작의 최첨단에 있는 작가들이, 생전 처음 비디오를 만져보는 일반인들과 동일한 기재를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 면에서 변화는 깊고 광범위하다.
|contsmark4|3. 사회적 관계로서의 테크놀로지그러나 유아기의 테크놀로지가 언제나 그러하듯, dv는 기존의 것과 충돌하면서 때로는 변혁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때로는 기존의 구조적 한계를 증폭시키거나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변화는 언제나 구체적인 생산관계와 권력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테크놀로지는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contsmark5|(1) 제작체계의 변화dv는 하이 8미리 3ccd 캠코더로부터 시작된 제작체계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그것은 1인 작업 시스템 혹은 비디오 저널리즘의 등장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기동성과 고효율의 강점을 논하기에 앞서 이 방식은 기존 제작 시스템과 이중으로 충돌한다. 우선 한가지는 역할의 재편성이다. 기존 방송의 팀 작업 체계에 dv가 도입될 경우 카메라맨과 pd로 분화된 역할은 급격히 하나로 통일되며 역할의 재편성은 불가피해진다. 그 결과 발생하는 두번째 변화는 고용구조에서 발견된다. 고용된 노동자의 입장에서 저예산 소인력 시스템은 노동조건에 있어서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 현재 일부 도입되고 있는 1인 제작 시스템은 아직까지는 역할의 재편성에 따른 잡음을 일으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악화와 노동 강도의 강화를 시도하는 자본의 유력한 공격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contsmark6|(2) 옛 구조에 새로운 옷을 입히다dv의 대두가 비디오 저널리즘의 융성과 등치되는 것은 미디어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단지 기존 방송의 전술적 구조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dv로 요약되는 소규모 제작 시스템이 방송사 시스템 내부에 도입되는 경우, 그리고 그것이 시민의 제작 참여나 독립적 제작 시스템에 도입되는 경우는 서로 다른 맥락과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게 마련이다. 특히 미디어의 현실 왜곡이 권력의 통제와 자본의 자기검열, 그리고 방송사와 독립 프로덕션간의 권력관계에서 비롯되는 하청의 사슬 등으로 표현되는 거시적 구조에서 출발한다는 상식적인 전제는 이곳에서도 예외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구조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좁은 의미의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만일 서로 경쟁하는 개인 제작자의 다수 등장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의 독립 제작 시스템에 대한 관계가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된다면, 착취의 강화를 나을 뿐이며 결과적으로 창작의 자유,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봉쇄하게 될 것이다.
|contsmark7|(3) 또 하나의 매너리즘기동성 있는 dv의 특성에 따라 장기간의 밀착 취재가 보다 용이해진다는 측면에 힘입어 hi-8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났던 선정적인 성격이 강한 소재주의,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물리적 취재에 집착하는 조악한 베리떼 스타일의 작품들이 양산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그동안 제도권 매체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그러나 다룰 수도 있었던) 소재에 대한 상업적 집착의 결과이며, 후자는 다큐멘터리의 언어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이 발전된 테크놀로지와 결합되어 탄생된 기형아와도 같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탈락 계층, 혹은 주변의 주변에 속하는 계층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마치 진보의 표상인 것처럼 오해되는 시대에서, 이러한 소재주의 혹은 거꾸로 선 형식주의는 상업주의의 미래를 위한 탈출구이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마치 카메라는 방금이라도 사회의 구석구석을 뒤지는 듯 싶지만 (센세이셔널리즘이 주는 신뢰감), 오히려 문제를 야기시킬만한 소재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오히려 카메라를 둘러싼 권력 관계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필요가 있으며, 테크놀로지가 강력해질수록 비판적 사고는 물리적 힘으로 표현됨으로써만 그것을 통제 혹은 확산시킬 수 있다.
|contsmark8|(4) 개인주의또 한가지, 1인 작업은 결정과정의 단순화로 작업의 효율성을 가져올 수는 있으나 집단작업 혹은 조직작업이 지니는 협의와 검증의 과정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자유’를 보장해줄 뿐이다. 재론할 필요도 없이 개인적 작업이 조직적 작업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그 역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1인 작업 시스템의 진보성을 가장 순수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본의 투자자들뿐이다.
|contsmark9|4. dv를 규정하는 방송 시스템의 미래상dv의 등장은, 팀 작업의 개인 작업으로의 대체 혹은 비디오 저널리즘의 융성이 아니라, 소규모 작업 시스템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존 제작 체계의 고도화라는 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기존 제작 시스템의 고도화를 방송사의 내부 구조라는 면에서 재검토하면, 문제의 성격은 이미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임이 명확해진다. 고용구조와 노동강도의 문제가 일반적인 노동의 존재조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미 dv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내부간의, 그리고 외부와의 왜곡된 권력 관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것인가라는 제작 체계의 재편성은 개별 제작인의 구체적인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가 양식과 내용에 있어서 지니는 정치적·구조적 한계는 dv를 통해서 강화될 수도, 혹은 극복될 작은 가능성을 제공받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dv의 도입을 계기로 방송사 제작 시스템의 민주적인 재편성, 그리고 팀 제작 체계의 내부 역할 분담에 대한 재평가를, 기존의 양식과 새로운 양식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엄밀한 고려 속에 진행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된다. 인류 역사의 어떠한 테크놀로지도 그러하듯, 테크놀로지는 그 시대의 역사적 한계에 의해 제약되지만, 동시에 도입기의 선구적 실천에 의해 비로소 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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