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필요한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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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따져보기]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요즘처럼 술이 땡기는 때가 없었다. 아니 MB 정부 들어 술이 계속 땡긴다. 지난해 언론악법 날치기를 보고, KBS 특보 출신 사장 선임을 보고, 방문진의 MBC 낙하산 사장 선임 등을 볼 때 마다 정말 맨정신으로는 살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나로 하여금 술을 푸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그나마 웃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바로 KBS의 〈개그콘서트〉이다. 그중에서도 “일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을 외치는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이라는 코너가 때로는 씁쓸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우리를 웃게 한다.

이 코너는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등의 유행어를 통해 단번에 〈개그콘서트〉의 수많은 코너 중에서 인기 코너로 부상했다. 〈개그콘서트〉의 다른 코너에 비해 이 코너에서 유독 많은 박수와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공감’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 개그 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는 남녀 취객 한명씩과 이들을 전혀 감당할 수 없는 무능력한 경찰이 등장한다. 남자취객은 경찰서가 아닌 곳에 있는 것처럼 난동을 부리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에게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종목, 백화점 1층에는 어떤 코너가 있는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 제대로 대답을 못한 경찰의 멱살을 잡고 남자 취객은 외친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첫 번째 ‘공감’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엉뚱한 질문으로 웃음을 이끌어 내지만 일등, 일류대, 일류기업 등 일등 지상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을 정확하게 꼬집어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 바로 이 엉뚱한 질문 속에 씁쓸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녹아 있어 보는 이들을 ‘뜨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또 말한다. 집을 사기도 너무 힘들고 버스 전용차선, 오르는 기름 값 때문에 택시운전하기가 점점 힘들어져서 택시를 팔고 대리운전 기사로 취직했다고. 취직하자마자 ‘대리’로 승진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경찰이 자꾸 난동 부리면 공무집행방해로 유치장에 넣는다고 하자 그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라고 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두 번째 ‘공감’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앞에서 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이야기 하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국가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터뜨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것. 그는 자신이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대사를 한 번 더 비틀어 풍자를 완성한다.  

마지막 ‘공감’ 포인트는 바로 이 코너의 제목에 있다. ‘술을 마신다’라는 의미의 ‘술푸게 하는 세상’은 비슷한 발음 때문에 ‘슬프게 하는 세상’으로 치환해서 들린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이 살아가기에는 그리 녹녹치 않기 때문에 ‘슬퍼서’ ‘술을 푸는’ 현실을 교묘히 반영한다. 마치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처럼.

그럼 이렇게 슬픈, 그래서 우리를 술 푸게 하는 세상에서 필요한건 무엇일까? 막연한 희망? 아니면 근거 없는 긍정의 힘? 아니 바로 ‘동혁이 형’ 같은 사람이다. 명절에 막히는 고속도로에서도 꼬박꼬박 돈을 받는 것, 커피와 통신비 등의 가격 거품을 직설적인 샤우팅 화법으로 호통 치며 개선을 요구하는 ‘동혁이 형’처럼 아닌 것, 부당한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우리가 살면서 술을 덜 푸게 되지 않을까? 그저 이것은 나만의 희망사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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