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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의 지역이야기]

좀 지난 일이지만, 이 얘기는 꼭 좀 하고 넘어가야 겠다. KBS의 연예오락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의 사이판 전지훈련 이야기다.

지난해 11월 20일 죄없는 한국인 관광객 6명이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으로 중경상을 입었다. 마산의 박재형(40) 씨는 평생 하반신 마비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고, 울산의 김만수(40) 씨도 제거하지 못한 몸속의 파편들 때문에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한다.

그러나 사이판 당국은 제도도 없고 전례도 없다는 이유로 보상은 물론 치료비조차 대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현지에서 응급구호 차원에서 이뤄진 병원 치료비 청구서를 한국까지 보내오기도 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의 부산 사격장 화재참사 때 없던 제도(특별조례)까지 만들어 거액의 보상을 해준 것과는 정반대였다.
 
‘천무단’이 사이판으로 간 까닭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KBS
한국의 언론은 발생 당시 단순 사건으로만 보도했을 뿐 피해자들의 원통한 사연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블로거들이 동맹을 이뤄 이 사연을 이슈화하기 시작했고, 100건이 넘는 글을 생산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의 시사프로그램들이 이를 다뤘고, 9시 뉴스에도 방송됐다. 인터넷에서도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일본인 다음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그 관광수입으로 살아가는 사이판으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 시점(1월 23일)에 〈천하무적 야구단〉이 하필 사이판으로 4박 5일 전지훈련을 떠난 것이었다. 사이판의 북마리아나관광청이 홈페이지와 뉴스레터를 통해 “인기 방송 프로그램과 연계한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힌 시점이기도 했다. 현지 관광청장이 직접 〈천하무적 야구단〉을 영접하면서 “한국에 사이판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뭔가 이상했다.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그램의 인기 덕분인지 관광청 뉴스레터 3월호 머리기사는 ‘사이판, 한국인 방문객 수 폭등!!!’이었다.

나는 KBS에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사이판 정부나 관광청으로부터 받은 제작비나 현물 협찬내역을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사이판 당국 협찬 내역은 비밀

시한인 14일을 꽉 채워 보내온 답변은 ‘비공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공개 사유’를 통해 협찬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했다. 관광청과 협찬계약서에 ‘계약 체결내용과 이행과정에서 지득한 업무상 사실에 대하여 비밀준수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 있고, 구체적인 계약사항을 공개할 경우 KBS와 마리아나관광청의 이익을 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또한 KBS는 공개 청구된 사항을 마리아나관광청에 지체 없이 통지하였으며, 마리아나관광청으로부터 정보 비공개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나는 이번 일을 통해 공영방송의 프로그램 제작협찬 내역이 ‘비밀’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매달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에게 이 정도의 알권리도 없다는 것 역시 처음 알았다. 그리고 KBS와 사이판 당국의 이익이 우리나라의 국익보다 앞선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협찬만 해준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보장이나 재외국민 보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공영방송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해할 가능성이 높은 KBS의 이익’이란 도대체 뭘까? 협찬에 눈이 멀어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한국인의 비난여론을 잠재워보려는 사이판 당국의 농간에 공영방송이 놀아났다는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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