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편한 ‘원칙’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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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편한 ‘원칙’의 잣대
[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0.03.18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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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이 사실이라는 입장을 법정에 제출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둘러싼 파문이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방송·언론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일 KBS와 MBC가 저녁뉴스에서 각각 19번째 리포트와 단신으로 관련 논란을 다루긴 했지만, 왜 이 사건이 논란이 되는 것인지 등 쟁점을 짚기보단 <요미우리>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청와대의 입장을 전하는 데 그쳤다. SBS는 여전히 관련 보도에 나서지 않고 있다.

공정방송을 자임하는 지상파 3사의 이 같은 모습을 두고 이 대통령의 독도발언 진위 여부를 궁금해 하는 누리꾼들은 물론 언론·시민단체들도 “<국민일보> 보도 이후 청와대와 지상파 방송 3사가 보여주는 침묵은 정권의 방송장악 현실이 연출하는 공포와 괴기의 스펙터클”(3월 12일, 언론개혁시민연대)이라고 비판하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 지난 2008년 4월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청와대
하지만 비판과 의혹의 눈길을 받는 당사자인 방송 3사는 “왜 보도를 안 한다고 비판하냐”고 되묻는다.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복수의 방송 관계자들의 입장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일보> 보도는 지난 2008년 한일 정상회담 직후 보도된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고, <요미우리> 입장은 소송 당사자 일방의 주장일 뿐이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구구절절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은 원칙 아래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방송·언론의 몫이다. 누구도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인정한다.

문제는 이 같은 ‘원칙’이 청와대와 관련한(정확히는 청와대가 곤혹스러울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달 뒤면 벌써 1주기가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당시 수사 중인 사안을 흘리고 그대로 받아 적어 전달했던 검찰·언론의 행태를 굳이 언급하진 말자.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과 시청자·국민 앞에 반성의 말을 내놨던 방송·언론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 했던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4대강 사업에 관한 언론보도 역시 마찬가지.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 몇 달째 여야를 넘어 여여 갈등까지 부르고 있고, 전문가들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한 방송 보도는 거의 없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정치 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발언 이후 보도가 ‘뚝’ 끊긴 걸 그냥 오비이락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원칙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일관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다. 모든 경우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일관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요미우리> 관련 논란에 대한 방송·언론의 ‘침묵’을 ‘원칙’의 문제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원칙’을 앞세워 <요미우리> 관련 논란에 침묵하는 방송·언론의 모습은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보도 여부는 각각의 방송·언론이 판단해 선택할 문제다. 때문에 <요미우리>를 포함한 일련의 사안들을 보도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당신들이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판단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해 ‘원칙’을 앞세우진 않았으면 한다. 그게 ‘원칙’이란 단어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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