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폴리트콥스카야를 추모하며
상태바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를 추모하며
[시론] 윤성도 KBS PD
  • 윤성도 KBS PD
  • 승인 2010.03.29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6년 10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한 아파트 단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48세의 한 여성이 사살된 채로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마피아들의 관례에 따라 범행에 사용된 마카로프 소음 권총이 놓여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가 4발의 총탄을 난사했고 그 중 한발이 머리에 명중했다. 피해자는 오후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건이 있기 9일 전 피해자의 아버지가 돌아갔고, 아마도 제사상을 차리려고 장을 봐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딸은 출산을 앞두고 있어 곧 할머니가 될 예정이었다.

▲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Anna_Politkovskaya)
그의 이름은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전세계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올 것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러시아의 독립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인 그는 수없이 체첸을 오가며 체첸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 왔다. 협박과 살해 위협이 잇따랐고 실제로 독살될 위기도 겪어 그 후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비극은 폴리트콥스카야 한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그해 11월에는 전직 KGB 중령출신으로 폴리트콥스카야의 죽음의 배후를 추적하던 리트비넨코가 독살됐다. 2009년 1월 같은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인 아나스타샤 바부로바는 러시아군 장교에게 성폭행 당한 후 살해당한 체첸소녀의 유가족을 돕다 무죄판결이 나자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한 인권변호사 마르켈로프와 함께 시내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다. 같은 해 7월에는 폴리트콥스카야의 친구로 2007년부터 제정된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상’의 첫번째 수상자인 나탈리야 에스테미로바가 체첸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후 변사체로 발견됐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러시아에서 언론자유의 영역은 여전히 통토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체첸의 인권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는 전세계 언론인들의 영원한 성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러시아와는 달리 기본적인 언론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나라 - 이를테면 미국 같은 곳 - 에서는 왜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같이 권력에 도전했다가 희생이 되는 언론인들이 거의 없을까? 물론 미국 같은 곳에서는 언론에 대한 폭압의 정도가 훨씬 덜하기 때문이겠지만 과연 이런 나라에서는 언론인들이 목숨을 걸 만큼의 사회적 부조리가 없기 때문일까?

미국의 미디어 독점의 폐해를 지적해온 언론학자 로버트 멕체스니 같은 이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목숨 걸고 권력과 기득권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상업화 저널리즘의 세계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고 자칫 권력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심층 탐사는 독점 미디어 그룹 입장에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상업화 미디어 시스템에서 언론의 사회 비판, 감시 기능을 점점 축소되고,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면 결국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최근 종편 선정을 앞두고 여권과 일부 신문들이 ‘신성동맹체’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방송도 입을 다물고 이들 신문들도 무섭게 침묵하고 있으면 세상은 평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이 넘게 끌어온 용산 참사 장례식을 끝낸 것이 바로 얼마 전이고 4대강은 천주교 주교회까지 반대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윤성도 KBS PD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이들 신문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도 정치적 지향은 지금과 비슷했겠지만 지금처럼 사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사안에 철저히 입을 다물거나 하지는 않았다. 종편이 생겨나기도 전에 이런 현상이 생겨나니 앞으로 진짜 미국처럼 미디어의 상업화가 본격화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 음습한 침묵의 나날이 얼마나 더 오래갈까.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같은 언론인이 생겨나는 사회는 불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 역시 암울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