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계에서] 김세건 독립PD

지난 28일 아침. 강변북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4중 추돌. 스키드 마크 소리와 함께 맨 뒤에서 치받은 택시는 폐차 수준이고 앞뒤로 끼인 내 차는 보닛과 범퍼가 우그러져 바로 공장으로 들어갔다. 내 차엔 와이프와 9개월 된 딸이 같이 타고 있었는데 룸미러를 통해 추돌될 때의 그 생경한 이미지가 아직까지 슬로우로 리플레이 된다.

2004년 2월. 휴먼프로그램을 밤늦게까지 촬영하고 중앙고속도로를 달리게 된 시간이 새벽 1시경. 앞뒤 차 한 대 없는 적막한 고속도로의 모든 사물은 먹물 같은 밤으로 정물화가 돼 있었다. 그 속을 가르는 두 줄기 헤드라이트 불빛을 풍경 삼아 30여분 달리는데 갑자기 성긴 눈발이 날리더니 순식간에 차선이 안보일 정도의 폭설로 변해 내 차를 덮쳤다. 동승한 조연출과 작가는 블랙홀이나 4차원 세계로 빨려드는 기분이라며 호들갑이었고 나 역시 방정맞게 밀란 쿤데라 원작의 영화 <프라하의 봄(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흥분은 채 10여 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눈길을 달리던 차가 미끄러지면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두 바퀴 반을 회전하고 나서야 멈춘 것이다. 천만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멈춰 섰지만, 차 수리비를 제작사에서 부담 할 수 없다 해서 고스란히 130만원이 내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독립PD들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PD 개인차로 촬영 다니면서 당하는 온갖 사고, 주차위반 스티커, 견인 등 모든 비용은 PD 개인 책임이다. 해외 오지나 분쟁지역 출장에도 그 흔한 여행자 보험 가입 없이 목숨 걸고 뛰어 다닌다. 실제로 생명을 잃기도 한다. 바로 지난주엔 40대 초반밖에 안된 동료 PD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화장했다는 그 PD의 주검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의도에서 몇이나 될까. 작년 7월엔 터키 출장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PD가 있었고 4년 전엔 30대 후반의 PD가 며칠 밤샘 작업 후 귀가하던 중 졸음운전으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런 독립PD들의 방송제작환경에 대한 실태조사가 작년에 보고됐다.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가 이끄는 노동사연구소에서 방송문화진흥회에 제출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위클리 시사교양 PD의 주당 노동시간은 100시간이고, 3주 간격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는 한 달에 10일을 귀가하지 못한다.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PD가 83%고 월급제가 52%이다. 그 어떤 수당지급은 한 푼도 없다. 진행되던 프로그램이 취소되거나 불방되면 보수 지급이 없으며, AD나 FD는 최저임금제도를 적용받지 못한다. 사회적 약자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을.

지난 26~27일 12명의 독립PD협회 집행부는 우이동으로 1박2일 전략 워크숍을 다녀왔다. 키워드는 PD의 권익 찾기, 돈 버는 PD, 글로벌 사업전략, 저작권 쟁취! 특히 현 시점에서 저작권은 독립PD들에게 절실하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영상제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이를 ‘창작한 자’가 원시적으로 취득한다. 즉 프로듀싱을 하는 방송사에 그 저작권이 귀속된다는 것이고 연출자로 올라가는 독립PD는 단순 기능직이란 거다. 납품한 마스터 본에 대한 방송권, 복제권, 배포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촬영원본 등 모든 지적재산권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방송사인 ‘갑’이 갖는다.

▲ 김세건 독립PD
제작비를 지급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되는 계약은 불공정한 계약이다. 공동저작물의 저작인격권은 저작자 모두의 합의가 없이는 이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저작권을 세분화하여 방송사, 제작사, 독립PD, 작가들이 각각 저작권을 가져야 한다. 이는 제작비 현실화라는 구체적인 해결책과 보호입법이 요구된다. 결국 독립PD의 ‘창작자’로서의 인정문제나 저작권 보호 문제는 제작자들의 교섭력에 따라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고 관계 법령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갑’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 찾기다. 수수방관 선 채로 죽을 순 없다는 의지로 2000여 명의 독립PD는 생존권을 걸고 싸울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