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EBS <육아일기-장애인의날 특집 ‘함께 가는길’> 방송 4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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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가 정상인 엄마 친구 될 수 있을까?”

|contsmark0|우리 규필이가 한 백일 남짓 되었을 때 나는 자주 두 가지 이상한 상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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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내가 설거지라도 하고 있을라치면 문득 아기가 ‘엄마’하고 걸어나올 것만 같은 상상(이건 아기의 천재성에 관한 상상), 하루종일 누워서 놀거나 자면, 우리 아기가 내내 저렇게 누워있기만 하면 어떨까 하는 섬뜩한 상상(이건 혹시 아기에게 장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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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후자는 일종의 직업병일 것이다. 많은 엄마들로부터 전해지는 편지 사연, 그리고 촬영 다니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편한 아기들을 많이 보아온 터라 그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증 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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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결국 나는 백일 남짓한 아기를 상대로 목을 제대로 가누는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는 돌리는 지, 뒤집기는 왜 안 하는지 등 며칠간 집요하게 아기를 감시했으며, 결국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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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마침내 나는 아기발달전문가에게 ‘우리 아기가 조금 더디다고 생각된다’며 울먹이는 소리로 전화를 걸어 바쁜 스케줄을 새치기해서 발달검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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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내게 돌아온 것은 ‘너무나 완벽한 아기를 왜 조바심을 내며 괴롭혔냐는 꾸지람’이었다. 급한 마음에 아기가 추워할 지도 모르는데 적당히 옷을 입히고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내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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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아기가 아주 아주 멀쩡하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우리 규필이에게 미안했던지, 집에 돌아와서 아기를 껴앉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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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지금 이 아기는 어느덧 10개월이 되었고 제법 엄마의 팔 근육을 불끈불끈하게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아기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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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많은 엄마들이 임신하면서부터 건강한 아기를 얻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낳아서도 건강한 아기를 바라듯이 나의 이 조바심은 건강한 아기를 원하는 마음의 극성적 발현이었던 것 같다. 내 육아의 첫 번째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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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육아 휴직을 하고 몇 달간 아기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동네 아줌마들과 육아에 관한 진지한 얘기를 통해서 아기의 정상적 발달이나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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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얘기를 하다보니 한 번쯤 나와 같은 상상을 하지 않은 아기 엄마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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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함께 <육아일기>를 만들고 있는 작가도 마찬가지, 역시나 8개월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터라 항상 허심탄회하게 프로그램의 향방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몇 차례 다루었던 얘기 중 하나가 장애아 교육이나 장애아들이 겪는 어려움 등에 관한 것들도 프로그램으로 소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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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우리의 경우는 ‘만약’이었지만 장애를 ‘현실’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엄마들, 그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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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육아휴직을 끝내고 복귀하면 반드시 그런 코너를 만들어보리라 - 나는 만화 주인공처럼 이따금 주먹까지 불끈 쥐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제작에 들어가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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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작가와 나는 이토록 많은 욕심을 부려놓고도 ‘엄마들의 관심사가 내 아기에 국한되어 있다’느니 우리 아기들이 자랄 공동체에 관한 관심은 거의 없다느니 하면서 틈만 나면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이것을 담아보자고 손까지 포개며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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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그렇게 2주가 흘렀을까? 새 코너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장애인의 날 특집을 준비하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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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8|아뿔사! 장애인의 날에 무슨 날 특집을 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편견이라는 생각만 하고 실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던 내 가슴을 치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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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아니, ‘만일’이라는 이름아래 가슴에 담아보았던 장애문제를, ‘우선 더 급한 일’을 해결한다면서 슬그머니 뒤로 미루어놓았던 내 뒤통수를 치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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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그러던 중 민용이를 만났다. 탤런트 이정재를 닮을 것 같은 아주 잘 생긴 아이였다. 너무나 순한 아기였고 조금 늦되다고 생각되었을 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결국 13개월 때 뇌성마비장애 판정을 받았고 장애인 등록을 하게 되었던 아기 - 이 대목에서 가슴에 핸드폰 진동음 같은 소리가 울렸다. ‘만일’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수많은 다른 엄마들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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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육아일기> 장애인의 날 특집 - ‘함께 가는 길’은 장애를 현실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엄마들의 고민 그 자체를 듣기보다는, 장애를 ‘만일’ 이라는 염려로 끝내버린, 다른 행복한(?)의 엄마들에게 조그만 질문을 던지는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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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0|‘또래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동지’가 될 수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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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3|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과연 비장애아를 둔 우리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을 끝까지 잘 봐 준 엄마들이라면 아마도 저마다의 가슴속에 ‘답’을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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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6|그나저나 이렇게 앉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구성을 바꾸어 장애아를 위한 코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contsmark67|나부터 이럴진대 누구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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