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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김병수 독립PD

엘바섬을 탈출한 ‘식인귀’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곧 ‘높고도 귀하신 황제폐하’로 칭송된다. 200년전 프랑스 신문의 이야기다. 모든 죄를 사면 받고 경영에 복귀한 ‘You-Know-Who’가 있다. 그리고 모두들 침묵한다. 오늘 우리 언론의 이야기다. 나는 이 침묵이 참 거북하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었다. 심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사실들을 활자로 확인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소름이 돋는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답답해진다. 〈토요타의 어둠〉을 받아보았다. 왠지 둘의 이야기가 겹쳐보였다. ‘도.삼.요.성.타’ 참 요상타…

〈토요타의 어둠〉 첫 장에서는 판매대수보다 리콜대수가 더 많은 도요타의 본질이 왜 알려지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최고의 광고 선전비를 쓰고 있는 도요타와 이것으로 먹고사는 언론에 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쓴 저자는 〈Japan News〉다. 그들은 광고수입 제로를 경영방침으로 삼고 있는 언론사다. 스스로가 이야기하듯 기업의 광고에서 자유로우면서 그들의 치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언론들도 이 기업의 광고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는 보다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황제의 수족이 되는 가신들은 광고비라는 아주 합법적인 언론 통제수단을 떠나 정관계에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뿌리며 관리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 언론, 시민단체를 찾아다녔지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들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거나 실체도 없는 검은 그림자에 짓눌려 스스로 제어장치를 발동한 것이다. 더 이상 쓸 수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된다. 어느새 우리는 문제의 일부가 된 것이다.

토요타는 ‘Just In Time’이라는 제도를 통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재고 관리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꼭 할당량을 생산라인에서 통과시켜야한다. 하청업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물품을 싣고 토요타의 공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한다. ‘You-Know-Who’는 십만 명을 먹여 살릴 한 명의 천재를 키워야한다고 했다. 둘은 닮았다. 한 명의 배를 불리기 위해 십만 명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재벌(chaebol)’(이제 고유명사도 아니고 아예 보통명사로 쓰고 있다)의 황제 경영에 대한 우려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정부는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우리의 중소기업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작년에 우리 정부는 이 언론사가 낸 기사에 반박 자료를 내고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다. 또 다시 거북해진다.

▲ 김병수 독립PD
가까운 미래에는 어쩌면 보다 균형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외국의 언론을 뒤져야하는 일이 발생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긍정적으로 여기서 우리의 살길을 찾아보는 거다. 서로 뉴스를 교환하는 거다. 우리는 영국의 정치 경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취재 보도하여 이를 그쪽 언론에 팔고 우리는 그들이 쓴 우리의 기사를 사오는 거다. 아… 나른한 봄날 스멀스멀 밀려오는 꺼림칙한 상상에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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