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가 돼 가는 이 시대 저널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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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문순 민주당 의원 이영환 비서관

한 때 그랬다. 99년 모신문사 사장이 탈세협의로 검찰에 출두할 때 해당사 몇몇 기자들이 도열해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친 적이 있었다. 이를 지켜본 대다수 언론계는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2005년 이른바 ‘안기부X파일’ 사건 때, 그리고 2008년 삼성특검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하면서도 또 한번 기자들의 ‘적극 엄호’를 받아 빈축을 샀다.

지금은 사뭇 다르다. 언론사 사주 또는 최고위간부들은 늘 기자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를 거부하는 기자들이 더 많았지만 요즘은 시쳇말로 ‘알아서 기는’ 이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로버널리스트(lobbyist+journalist)

로비스트(lobbyist). ‘특정 압력단체의 이익을 위해 입법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정당이나 의원을 상대로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로비스트들의 전당이다. 행정부, 정부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 기업체, 그리고 시민단체까지 그야말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전성시’ 다. 요즘엔 이 로비스트들 속에 한 집단이 더 추가됐다. 바로 기자들이다.

18대 국회 2년여만 돌아봐도 그렇다.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4월 ○○법 개정안 통과 앞뒤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들은 북새통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A사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개정안 심의가 농익어갈 무렵에는 사장 이하 주요 간부진들이 총동원됐다. 영구적으로 국고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중차대한 일인 만큼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A사는 나가도 한참을 더 나갔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회사의 의견을 공식 제안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각 당 출입기자들의 손에 회사의 입장이 담긴 문건을 쥐어주었다. 법안에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의원, 보좌진은 따로 모든 인맥들이 동원됐다. 조금 과장한다면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가 왔다. A사가 오고간 뒤에는 그와 경쟁하고 있는 B사 기자들이 뒤를 이어 찾아왔다.

누가 기자를 ‘직장인’으로 만드나

올해에도 이런 모습은 심심찮게 목격된다. 모방송사가 동계올림픽 단독중계권을 거머쥔 이후 국회의원회관은 각 방송사의 각축장이 됐다. 단독중계가 국민들의 보편적 접근권을 제한한다는 ‘창’ 쪽 주장과 모든 지상파방송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중계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방패’ 쪽 주장이 팽팽하다.

이러한 논쟁 가운데 최일선에서 공격하고, 수비하는 것은 모두 해당사 기자들의 몫이다. 모방송사는 뉴스앵커까지 전진 배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단지 정치권에서만 이러한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미 기자들은 자사를 위한 ‘로비스트’가 돼 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90년대 말 각 언론사마다 열풍적인 조직개편이 있었다. 최고경영자의 비서․의전업무를 담당하던 사장실에 회사의 미래 비전을 고민하는 전략기획 업무가 더해졌다. 머리 역할을 할 차출 1순위는 주로 편집국이었다. 사주들은 이곳을 거치면 개인의 미래 또한 보장시켜줬다. 기자들도 수익을 위해 기사를 빼고, 또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노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부 잇속 빠른 경영진은 오히려 노조출신자를 우대해 안팎으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만들었다. 예전에는 인력운용에 여력이 없다며 회피만 하던 언론단체 진출도 장려했다.

위협받는 저널리즘

저널리즘의 위기를 토론하는 자리에 가보면 ‘세계 경제위기’ ‘뉴미디어’ ‘미디어융합’ 등 주로 경제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는 목소리들이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먹고사는 문제에 천착하다가 ‘국민신뢰’ ‘기자정신’ 등 결코 내주지 말아야할 무형의 가치들이 무너지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할 당시 자사 또한 방송발전기금을 내게 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왜 로비 한번 제대 안했느냐”며 기자들을 닦달한 C사 간부, 자사 사장의 국회 출석 모습을 찍지 못하도록 온 몸으로 동료기자들을 막아서다 드잡이까지 했던 D사 기자, 언론단체의 수장이 된 예전 상관의 부탁에 수행원 노릇을 한 E사 기자 등은 한국 저널리즘의 붕괴를 더 처절하게 증명해 준다.

오늘도 수많은 기자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최일선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다. 그런 그들의 뒤에 서서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며 ‘로비스트’가 되라 하는 자들이 있다. 당신들은 공적 영역에 서 있어야 할 후배들을 지금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 이 글은 최문순 민주당 의원 블로그(http://blog.daum.net/moonsoonc/)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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