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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세상읽기]

▲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88만원 세대 저자)
PD에 관해서 들은 가장 재밌는 얘기는, 프랑스 유학 시절에 들은 얘기이다. PD라는 발음을 그냥 불어로 하면 ‘뻬데(PD)’라고 읽게 되는데, 알리앙스에서 전직 PD가 정말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뻬데’는 불어 속어로 게이를 의미한다. “나는 PD였었다”가 “나는 게이였었다”라는 의미가 되었으니, 상당히 오랫동안 유학생들끼리 회자하던 얘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재밌는 얘기는, KBS의 팀장이었던 이상요 PD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했던 얘기이다. 앞으로 읽으면 ‘이상’, 뒤로 읽으면 ‘요상’, 자신은 정말 이상하고도 요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혼자 있다가 이 이름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요상한 이상요 PD와 함께 경제 프로그램을 하나 같이 기획하던 것이 있었는데, 정권 교체와 함께 만들어지지 못했다. 세 번째로 재밌는 얘기는, 교육방송에서 들었던, ‘애국가 시청률과의 경쟁’에 관한 얘기이다.

우리나라 공중파의 애국가 시청률은 보통 1%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교육방송에는 1%가 채 안 되는 방송들이 많다. 해석하면, 한국 사람들은 애국가가 나오면 놀라지 않고 그냥 나오나보다 하면서 채널을 그냥 두지만, 혹시라도 돌리다가 교육방송이 나오면 기겁을 하고 끈다는... 케이블 방송 중에는 한 때 〈백지연의 끝장토론〉이 인터넷 상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이 때의 시청률도 0.7%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공중파의 인기 드라마나 버라이어티쇼들은 상상 초월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방송 PD들은 애국가 시청률과 경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케이블에서는 시청률 2%를 ‘꿈의 시청률’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공중파로 환산하면, 대략 40% 정도의 시청률을 올린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한다. 시청률 앞에서, 많은 PD들은 약해진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좋은 시청률과 좋은 시청자 반응 앞에서도 많은 프로들이 풍전등화처럼 날라가고, MC가 바뀌고, 방향이 바뀌는 아수라장을 겪기는 했지만, 어쨌든 시청률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대의 방어막인 셈이다.

2009년 2월달부터이니 내가 매주 〈PD저널〉에 원고지 12매 안팎의 글을 쓴 게 이제 1년 조금 넘어간다. 어차피 내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정부에 대해서 고운 얘기일리가 없으니, 내 주변 사람들은 좀 말렸다. 괜히 블랙리스트에나 올라가고, 방송 나갈 일이 아예 없어지니까, 신중하게 결정하라고들 말했다. 사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방송 정책에 대해서 나는 정부와 입장이 같은 적이 없었다.

▲ 4월 1일 발행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특보 3면.
2006년 월드컵의 지나친 쇼비니즘 방송에 대해서도 한바탕 했었고, 정연주 사장 시절에도 ‘경제 비타민’ 같이 과도하다 싶은 경제 근본주의를 조장하는 방송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었다. 어차피 나는 TV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신문은 물론 방송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생각을 하는 학자이기 때문에, “나갈 일 없으면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 환경이 바뀌는 것을 내가 접해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테랑의 14년 사회당 정권이 바뀌면서 프랑스의 시락과 함께 우파정권이 들어왔을 때, 한국처럼 ‘방송장악’과 같은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았다. 매일밤 인형극으로 그날의 정치 코미디를 하는데, 이 인형에는 각 당의 대표주자들은 물론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파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시락 인형은 방송에 나왔고, 사람들은 프랑스식의 적나라한 풍자와 야유를 매일 밤 보면서 즐겼다.

일본의 경우도 50년 자민당 통치가 끝나면서 작년에 새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왔지만, 공영방송인 NHK에서 자민당 축출이니, 방송 정화니 하는 시끄러운 잡음이 들리지는 않았다. KBS에서 새로 신설한다는 ‘MC 선정위원회’ 같은 것은, 진짜 한국다운 창피한 일이다.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면, “아, 내가 한국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팍팍 든다. 그래, 이렇게 촌스러운 일들이 생기고, 80년대 ‘땡전 뉴스’ 감성이라야, 이게 바로 한국이고, 이게 바로 한나라당식 통치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 복잡하던 시기에 〈PD저널〉 칼럼을 1년 넘게 쓰면서, 나야말로 팔자에 없게 한국의 많은 PD들과 슬픈 일도, 고단한 일도,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도 함께 겪게 되었다. 살면서 지금처럼 방송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일이 또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름, 한국에서 PD들이, 이 순둥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자세하게 볼 기회가 되어서 보람은 있던 것 같다. 자, 이제 이 칼럼도 덮을 순간이 왔다. 한국의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40% 시청률이든, 애국가 시청률이든, 하여간 모든 PD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PD이니라.”

※ 이번 칼럼을 끝으로 ‘우석훈의 세상읽기’ 연재는 마칩니다. 그동안 ‘세상읽기’를 연재해 주신 우석훈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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