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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A=이국배 통신원

한때 뉴스 전문 채널의 대명사였던 CNN이 최근 위기에 봉착했다. 90년대 초 이라크 전을 계기로 뉴스 전문 채널의 정보력과 신속성을 전 세계에 과시했던 CNN은 최근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 중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CNN은 1년 사이에 기존 시청자의 절반 가까이를 잃어버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이번 1/4분기동안의 CNN 방송의 프라임 시간대 시청자는 전년 대비 40%가 떨어졌다. 3월 29일자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CNN은 지난 2009년 10월경 전체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 중에서 시청률 최하위를 기록한 이후 그 하락세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 미국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가 진행하는 보도 프로그램 의 올해 1/4분기 시청자도 전년 대비 42%로 줄어들었다. <사진=CNN>
이제는 “뉴스 채널 중 가장 신뢰받는 방송”이었던 CNN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가 오히려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CNN의 시청률 하락과 관련해 주변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금의 CNN의 위기는 CNN 스스로가 언제부터인가 “말하기를 그쳤다”는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CNN의 추락은 일찌감치 예견됐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004년 대선에서 부시 행정부가 백악관에 재입성한 이후 CNN은 대표적인 인기 프로그램이자 난상토론의 대명사였던 <크로스파이어>를 편성에서 제외시켰다. <크로스 파이어>는 보수와 진보, 정치적으로 좌와 우의 입장에 선 관계자들이 출연해 말 그대로 대놓고 ‘크로스 파이어’를 하는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문제는 단지 <크로스 파이어>의 편성 제외가 아니었다. 이같은 편성기조는 CNN 보도의 소위 ‘기계적인 가치 중립화’를 불렀고, 특정 사안에 대한 논평과 분석, 제언보다는 스트레이트 보도에 보다 무게를 싣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도에서의 관점(agenda)의 상실은 단지 관점의 상실에 그치지 않고, 결과적으로 보수와 진보, 시청자 모두를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Politico> 3월 31일자 “CNN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참조)

CNN의 이 같은 위기에 대해 MSNBC의 보도국장을 지낸 데이비슨 골든은 “CNN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저녁 뉴스 시간대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폭스 뉴스에 대한 진보적 대안은 CNN이었고, 이 같은 정체성이 CNN 브랜드를 형성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CNN이 진보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추종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제이 로슨 뉴욕대 저널리즘 교수는 “프라임 시간대 시청자들은 스트레이트 보도 외에도 때로는 ‘극단적인’ 입장을 지향하는 앵커의 견해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KBS America 편성제작팀장
즉,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떠한 형태든 견해나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보도 프로그램의 ‘신념’ 자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송 보도가 이 같은 ‘가치 지향성’ 자체를 상실할 경우 시청자들은 해당 보도를 ‘확신이 담긴 믿을 만한 목소리’로 듣지 않기 때문에, 보도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시작한 가치중립이란 입장이 되레 ‘소심한 목소리’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가치중립’이라는 관념적이면서 비현실적 입장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일, 그것이 바로 위기에 처한 CNN뿐 아니라 전 세계 방송 보도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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