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성사된 3당대표들의 TV선거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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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 배선경 통신원

 영국 총선이 5월 6일로 다가왔다. 각 정당들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지난 4월 15일에는 주요3당 대표의 TV토론이 ITV를 통해 방송됐다. 사실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주요 3당의 대표가 TV를 통해 논쟁을 벌이는 것은 영국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방송은 역사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올해 선거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정치와 방송, 두 분야에서 모두 탁월한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영국이 왜 그 동안 선거를 위한 TV토론을 하지 않았을까?

▲ 내달 6일 총선을 앞두고 지난 15일 영국 ITV에선 영국 정치사상 최초로 주요 3당의 대표가 나와 TV토론을 벌였다. ⓒITV
영국에서는 1964년 총선 때 이미 정당대표들의 TV토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수상이었던 알렉 더글라스 홈은 이것이 음악 차트 프로그램 같은 쇼가 될 것이라며 필요성을 일축했다.

그후에도 총선이 있을 때마다 대표들의 TV선거토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보수당 대표였던 마가렛 대처는 이것이 영국 정치와는 맞지 않는 포맷이라고 간주했고,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에게 공개되는 의회방송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며 이 요구를 거절했다.

사실 일련의 의견들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TV선거토론에서 볼 수 있듯이 TV는 정치인들의 논지뿐 아니라 그들의 의상, 제스처, 혹은 카메라 앵글에 따라 다른 의미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때로 가장 좋은 쇼를 보여주려 애쓰는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닌 각 지역에서 선출된 MP(하원의원) 수에 따라 대표정당이 결정되는 영국에서 한 사람의 퍼포먼스가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번 TV선거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TV선거토론을 미뤄온 구구절절 한 이유들은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TV선거토론이 가진 큰 장점을 무시할 만큼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영국 정부가 TV선거토론을 거부했던 실질적인 이유는 이미 다른 정당에 비해 월등히 앞선 지지율을 가진 상황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 TV논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가렛 대처를 위시한 80년대 보수당 정부가 그랬고 97년 이후 정권을 잡은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그러했다. 그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자칫 벌어질 수 있는 실수와 돌발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설전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는 안정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그러나 현재 고든 브라운의 노동당 정부는 다르다. 이라크전과 경기침체 등으로 노동 당의 지지율은 하락했고 언론들은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TV선거토론은 이길 확률이 없는 정당대표의 묘수’라고 비난하며 거부할 명분이 현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이 지속적으로 TV선거토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드디어 고든 브라운은 3당대표의 TV선거논쟁에 동의했다.

50여년 간 미뤄온 영국 주요3당 대표들의 첫 TV선거논쟁은 9백만이 훌쩍 넘는 시청자(약 35~40%의 시청률에 해당하는)를 끌어 모았다. 앞으로 스카이 뉴스와 BBC를 통해 두 번의 토론이 더 진행될 예정이다. 세 번의 역사적인 TV토론이 끝난 후 영국의 정치 이야기, 선거이야기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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