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장악하면 ‘PD수첩’ 이름부터 바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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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철 KBS본부장 ‘MBC 함락’ 우려…“함께 질기게 싸우라”

“김재철 사장이 가고 다음 사장이 온다고 해도 제일 먼저 〈PD수첩〉을 손보려 들 것이다. 〈PD수첩〉을 〈PD생각〉, 〈PD일기〉 이런 식으로 바꿀 거다. 크게 탄압하지 않는 것처럼 먼저 이름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저항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KBS의 〈쌈〉이 없어지고 〈미디어포커스〉가 〈미디어비평〉으로 바뀌며 존재감이 없어지는 과정이 그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MBC노조의 김재철 사장 퇴진 투쟁을 지켜보며 엄경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남다른 소회를 나타냈다. 엄기영 전 사장 사퇴와 김재철 사장의 인사 전횡 등 현재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연주 전 사장 해임으로부터 시작된 정권의 KBS 장악 수순과 이상하리만치 닮은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엄 본부장은 “요즘처럼 MBC를 가까이 느낀 적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 MBC노조가 파업 18일째를 맞은 22일, 오후 집회를 갖고 있다. ⓒPD저널
22일 오후, MBC노조의 파업 집회에 참석한 엄경철 본부장은 “KBS의 함락”에 대해 비통해 하면서 동시에 MBC에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그는 MBC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힘내서 열심히 싸워 달라”고 격려했다.

“김재철이 가도 더 한 사장 올 것…지난한 싸움”

앞서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란 제목의 영상을 감상한 엄 본부장은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MBC를 사랑한다고, 응원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을 보니 부럽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최근 KBS를 사랑한다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어버이연합회, 재향군인회 등. 요즘은 청와대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웃지 못 할 농담을 덧붙였다.

그는 “여러분의 투쟁은 승리하고, 김재철 사장은 물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김재철이 가면 천사가 오나?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김재철이 가면 다음 사람은 더 녹록치 않은 사람이 올 것이다. 결국 지난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KBS가 침몰하고 추락한지 2년”이라면서 탐사보도팀이 없어지고, 시사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과정을 설명한 그는 “하나하나 양보하다 보면 쉽게 무너진다. 그것이 함락의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즐기며 싸우고, 질기게 싸우라”고 강조했다.

“사실 공영방송의 철학이나 가치관이라는 게 허무하다. 그것은 즐기며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사실 예전엔 내가 노조 위원장이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파면 당하고 징계 받고 지역으로 전출되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KBS 새 노조의 탄생에는 인간적인 미안함이 깔려 있다.”

그는 이어 “공영방송에 대산 신념과 확신도 중요하지만, 옆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 그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며 “그러면 더 질기게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제(21일) KBS본부 집회에 이근행 MBC본부장과 연보흠 홍보국장이 참석했는데,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KBS 새 노조가 MBC의 싸움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가 느껴져 기뻤다”면서 “표시는 안 나지만 그 박수에 많은 것이 들어있다고 본다. 그런 마음으로 절실하게, 힘내서 열심히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엄경철 본부장의 격려사에 대해 이날 집회의 사회를 맡은 오상진 아나운서 조합원은 “요즘 KBS의 〈신데렐라 언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화답해 좌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노조의 투쟁이 ‘PD수첩’ 방송 가능케 했다”

▲ 박건식 'PD수첩' PD가 '검사와 스폰서'편 방송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PD저널
한편 이날 조합원들은 지난 20일 방송된 〈PD수첩〉 ‘검사와 스폰서’편을 단체로 시청했다. 시청이 끝난 뒤, 〈PD수첩〉팀의 박건식 PD는 “많은 기자들이 어떻게 이 방송이 나갈 수 있었냐고 물었다”며 “김재철 사장이 약한 것이 아니라 방송을 지키기 위한 MBC 구성원들이 강한 것이다. 노조원들의 투쟁이 오늘의 방송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파업은 저널리즘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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