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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도 4일째 무산, “외부 사무실 구해…조직개편 추진”

김재철 MBC 사장의 출근 시도가 4일째 무산됐다. 김재철 사장은 23일 오전 여의도 MBC 본사로 출근을 시도했으나,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 이하 MBC노조) 집행부의 저지에 가로막혀 약 15분만에 발길을 돌렸다.

김재철 사장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인 오전 8시 57분쯤 황희만 부사장 등 경영진과 함께 MBC 방송센터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히 이날은 국장단과 일부 보직부장들도 김재철 사장을 맞이하러 나왔다.

▲ 김재철 사장이 23일 오전 출근을 시도, 자신을 맞으러 나온 국장단과 악수를 하고 있다. ⓒPD저널
노조에선 이근행 위원장 등 집행부 15명 정도만이 정문 앞에서 김재철 사장을 막아섰고, 출근저지 투쟁을 담당한 기술부문 조합원 50여명은 1층 ‘민주의 터’에서 대기했다. 김재철 사장은 “조합원들이 국장님들이 신경 쓰여 다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철 “난 ‘PD수첩’에 한 마디도 안 했다”

지난 20일부터 출근시도를 시작한 이래 김재철 사장과 이근행 본부장은 매일 설전을 벌여왔으나, 이날은 조금 달랐다. 김재철 사장은 이근행 본부장의 “사장이 회사와 인사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고, 조합원들을 향해 가만히 서 있거나, 국장단과 악수를 나누고 몇 마디 주문을 하는데 그쳤다.

김 사장은 국장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나는 〈PD수첩〉에도 한 마디 안 했다. 오히려 명예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라며 지난 20일 ‘검사와 스폰서’편이 어떤 ‘입김’도 없이 순탄하게 방송된 것을 자랑하듯 말하기도 했다.

오전 9시 2분쯤, 양효경 MBC노조 보도부문 민실위 간사가 지난 1992년 최창봉 사장 퇴진과 구속자 석방을 위한 파업 투쟁 당시 보도부문 조합원 120명이 썼던 호소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간부사원일동 유인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호소문에는 지금의 MBC노조 파업을 ‘정치투쟁’이라고 비판하는 김재철 사장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양효경 MBC노조 보도 민실위 간사가 92년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을 포함한 보도부문 조합원들이 썼던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PD저널
“(전략) 전파는 국민의 것이기에 문화방송의 파업은 사회문제화 됐으며 이 때문에 학계,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도, MBC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간부’들은 노동조합의 공정방송을 향한 외침들을 ‘정치투쟁’, ‘선거정국을 의식한 투쟁방식’ 운운하며 노조의 활동을 정치색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여권의 방침과 너무나 흡사해 마치 앵무새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후략)”

김재철 사장은 3분여동안 이어진 양효경 간사의 호소문 낭독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낭독이 끝난 뒤에도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더니, 옆으로 두 세 발자국 정도 옮긴 뒤 다시 가만히 서 있었다.

이근행 “사장이 MBC 파괴 주범…MBC 훼손 권리 없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이근행 본부장이 “92년 파업 당시 기자 조합원들이 낸 글이다. 나도 그때 2년차였다. 52일간 파업하면서 선배들 잡혀가는 모습을 봤다”고 입을 열었다.

이 본부장은 “MBC가 어떻게 지금까지 저력 있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실력 있는 방송사로 유지 될 수 있었나. 지금의 영광은 어디에서 비롯됐나”라며 “열심히 일하고, 파업을 불사하며 MBC의 가치와 언론의 가치를 지키려는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이어 “그런 문화를 사장이 다 망가뜨리고 있다. 사장이야 말로 MBC 파괴의 주범”이라고 비판하며 “여기 있는 선배들이 피땀 흘려 MBC의 가치를 만들었는데, 사장이 무슨 권리로 수십 년 MBC의 전통과 저력을 함부로 훼손하나. 그럴 권리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 김재철 사장이 이근행 MBC노조 위원장(오른쪽)의 말을 듣고 있다. ⓒPD저널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던 김재철 사장은 국장들 앞으로 가 “부장들에게 잘 말씀을 해서 후배들과 사원들을 설득해 빨리 복귀하도록 하라”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상처가 깊어진다. MBC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한다.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많이 반성…외부 사무실서 집무, 조직개편 추진”

김 사장은 이어 “다음 주쯤 예정대로 조직개편을 추진할 것”이라며 “지난해 승진인사가 없었는데, 파업이 끝나는 대로 승진인사를 할 테니 본부장과 상의해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노조가 출근을 막아서 부사장과 일할 수 있는 조그만 사무실을 밖에 마련했으니, 언제든 국장들과 만나 일할 수 있다”고 말해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음을 거듭 시사했다.

그리고 오전 9시 12분께 김재철 사장은 다시 승용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김재철 사장이 떠난 뒤에도 MBC노조는 정문 앞을 지키며 “MBC 죽어간다 경영진은 각성하라”고 외쳤다.

한편 김재철 사장이 이날 언급한 조직개편과 관련해 최기화 홍보국장은 “지난번 비상경영 당시 무리하게 조직을 줄인 부분이 있어,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직은 다시 살리고 더 줄일 부분은 없는지 실무부서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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