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추모 방해한 5주간의 ‘웃음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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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예능프로 결방 ]
과도한 애도 분위기 조성에 시청자 ‘반감’ … 자의적 기준도 논란

‘천안함 침몰’ 이후 한 달 넘게 파행을 빚었던 지상파 방송이 영결식 다음날인 오는 30일부터 정상화될 전망이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이유로 쇼·오락 프로그램 편성을 자제해왔다.

사고 직후 방송 3사는 예능 프로그램을 잇달아 결방했지만, 시청자들은 크게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실종자들이 속히 구조되길 바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방사태가 한 달을 넘어서자 시청자들은 ‘방송이 지나치게 추모분위기를 강요한다’며 반발했다.

K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서 윤현호씨는 “천안함 사건은 슬픈 일이지만, 방송에서 예능만 제외하면 그게 애도인가”라며 “국민의 웃을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요즘의 결방사태는 애도를 강요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엔 대한 규명 없이, 무턱대고 예능 프로만 결방시키는 것도 여론의 반발을 부추겼다. 시청자 전제원씨는 “KBS의 역할은 이번 참사의 의문점에 대한 심층보도와 재발방지”라며 “전체주의 국가처럼 TV 프로그램을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멍청한 태도”라고 꼬집었다.

▲ KBS는 3주 연속 주말에 천안함 특집방송을 편성했다. 사진은 추모음악회. ⓒKBS
전문가들은 방송의 ‘지나친 추모 분위기’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실을 호도하고, 다른 주요 의제를 희석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일상적 방송을 접고 천안함에 대해 과도한 의제설정을 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에 책임 떠넘기기식 보도를 하는 것은 냉전적 시선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도 “방송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종교계 반발이나 지방선거에 대한 의제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며 “일상으로 돌아와 챙겨야 할 일이 있는데, 추모 분위기만 연장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5주 동안 결방된 <개그콘서트> ⓒKBS
방송사의 ‘자의적 결방기준’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사들은 대체로 애도 기간 웃음을 자제한다는 취지로 쇼·오락 프로그램을 결방시켰다. KBS의 간판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천안함 사고 이후 5주 동안 방송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방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지난 3일 천안함 실종자 가운데 처음으로 고 남기훈 상사의 시신이 발견돼 이날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결방됐지만 SBS <스타킹>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KBS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는 애도 기간 중 한 차례만 결방됐다.

쇼·오락 프로그램을 대신해 편성된 코믹 영화나 드라마도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SBS는 지난 18일 <인기가요> 대신 <검사 프린세스>를 방영했고, MBC도 예능 프로그램 대신 영화 <7급 공무원>을 내보냈다.

KBS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서 이택균씨는 “예능은 결방시키면서 스포츠 중계나 ‘막장 드라마’는 내보내던데 그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연우 민언련 대표는 “국민적 참사에 대해 애도기간을 갖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어떤 성격의 프로그램을 자제할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당초 4월 10일 첫방송될 예정이었던 <하하몽쇼>는 '천안함 침몰사고'의 여파로 방송이 5월초로 밀렸다. ⓒSBS
반면 윤성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위원회 간사는 “며칠 동안 어떤 프로그램을 결방할지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상식선에서 결정해야 되는데, 이번 경우는 너무 지나쳤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예능국장의 자제요청에도 불구하고 예능 프로를 내보낸 것과 비교하면 ‘이중잣대’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KBS는 안팎의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24일 3주 연속 ‘천안함 성금모금’ 방송을 진행했다. KBS는 지난 23일까지 성금이 2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KBS 이사인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성금방송은 과연 이것이 필요하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희생 장병들은 ‘사고사’를 당했는데, 그들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애국자인 것처럼 과도하게 몰아가면 자칫 객관적 사태파악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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