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김재철, 황희만 선배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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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기자‘라고 불리기 시작하던 순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의 편에 서고, 어떤 유혹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이름. 그게 기자라고 배웠습니다.

기자들에게 선,후배 관계는 다른 어떤 직장, 직업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기자에게 ‘선배’라는 존재는 팩트와의 외로운 싸움을 채찍질하고 때로는 엄하게 질책하면서도, 늘 뒤에 든든히 버티고 서있는 존재입니다. 현장에서 몸을 치열하게 부대끼며 쌓은 무한한 신뢰가 있기에, 후배들은 현장에 몸을 던지고 선배들은 그 기사와 영상을 지켜줍니다. 그렇게 만드는 뉴스 앞에서 우리는 선후배를 넘어 동료이자 동지가 됩니다. 이게 저희가 배운 기자 사회의 미덕이자 전통입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김재철, 황희만 두 선배와 그렇게 만났습니다. 캡으로, 데스크로, 부장으로, 또 국장으로. 두 선배는 늘 후배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함께 머리를 맞대주신 선배였습니다. 그런 두 선배와 함께 취재 현장을 누비고 뉴스를 만들던 벅찬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후배들은 그렇게 쌓아온 두 분 선배에 대한 기억을, 기자 사회의 미덕과 전통을 마음 속에서 스스로 지우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2007년 대선을 취재하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당시 울산 MBC 사장이던 김 선배가 이명박 후보의 선거 캠프이던 안국포럼에서 이 후보를 잘 부탁한다며 돌아다니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후배들은 설마설마 하면서도 선배를 믿었습니다. 엄기영 사장에 대한 방문진의 폭력적인 축출 과정이 지나간 뒤 선배가 사장으로 오셨을 때까지도, 김우룡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이 나왔을 때도, 여전히 후배들은 최소한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은 청와대 낙하산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겠다던, 그래서 황희만, 윤혁 두 사람을 임명하지 않겠다던, 김우룡을 고소하겠다던 김 선배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해군 군함 침몰 사건이 터졌습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믿고 백령도로, 평택으로, 국방부로, 뉴스 센터로, 그렇게 취재 현장에 몸을 던졌습니다. 선배들의 가르침대로 모든 걸 잊고 현장과 팩트만을 좇았습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김 선배는 스스로 내건 약속을 뒤집었습니다. 초대형 사건의 현장에서 선배들을 믿고 몸을 던지던 후배들은 허탈했습니다. 우리 선배가 말을 뒤집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후배들은 일터를 떠났습니다. 대형 사건의 현장을 뒤로 하고 일터를 떠난다는 게 기자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결정인지는 30년을 기자로서 살아오신 김 선배도 잘 아시겠지요. 그래도 많은 후배들은 믿음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습니다. 후배들이 일터를 떠난 건 김 선배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라기보다는, 최소한 김 선배가 진정 MBC와 사랑하는 후배들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주는 후배들의 그 믿음이 점점 희미해지는 기간이었습니다. 김 선배가 지난 30년 기자 생활 동안 후배들에게 남겨 놓은 기억을, 희극과 비극이 하루에도 몇 차례 씩 교차하던 지난 4주의 기억이 빠르게 덮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 대해 고소와 가처분 신청을 하셨습니다. 손해배상소송도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수많은 파업을 겪어온 MBC 역사에서 없었던 일입니다. 김 선배는 스스로 후배들의 등에 칼을 꽂고,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어온 MBC 보도부문 선후배의 연을 끊으셨습니다. 후배들을 죽이겠다는 선배는 없습니다. 저희는 아직도 믿고 싶습니다. 이게 선배의 뜻이 아니라고. 청와대의 조인트 때문에 괴로운 선택을 강요받으신 거라고. 그러나 더 이상 저희의 믿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선배가 저희들과의 연을 끊으신 이상, 저희들도 더 이상 김 선배를 선배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MBC의 사장으로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떠나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이제 김 선배를 선배로 부를 후배는 별로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장으로서는 물론, 선배로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굴욕을 계속 견디시겠습니까? 청와대의 조인트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추락하는 명예는 무섭지 않으십니까?

황희만 선배께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억울하실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과정이야 어떻든 후배들 대다수가 인정하지 않는 사장의, 껍데기만 남은 인사권을 붙잡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기자 선배로서 진정 후배 기자들에게 일하고 싶은 즐거운 일터를 물려주는 길이 무엇인지 숙고해주십시오.

이 글은 두 선배께 후배들이 드리는 마지막 글입니다. 선후배로서의 마지막 연이 물러나달라는 편지여서 죄송합니다. 부디 대의를 위한 후배들의 충정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2010년 5월 3일
MBC 보도부문 252명

[MBC 기자회]-가나다 順

80년대 입사

김동섭 김성수 김종화 김형철 성경섭 *신경민 *안성일 윤능호 윤병채 *이우호 임흥식
*조헌모 지윤태 최명길 *최용익

90년대 입사

강명일 고현승 권순표 금기종 김대경 김대근 김성우 김소영 김수정 김연국 김연석 김재용 김재용 김정호 김종경 김주만 김필국
김효엽 문소현 민병우 박광운 박범수 박상권 박성호 박준우 서민수 성장경 안형준 여홍규 연보흠 유상하 이동애 이상현 이성일
이성주 이승용 이언주 이주훈 이진희 이태원 이효동 임영서 전동건 전영우 조문기 조승원 최장원 허지은 홍상원

2000년대 입사

강나림 강민구 강연섭 고은상 공윤선 곽승규 권희진 김경호 김민욱 김병헌 김세의 김세진 김수진 김시현 김재경 김재영 김정인
김준석 김지경 김현경 김혜성 김희웅 나세웅 남상호 노경진 노재필 민경의 민병호 박민주 박선하 박소희 박영회 박재훈 박주린
박찬정 박충희 백승규 백승우 백승은 서혜연 송양환 신기원 신은정 신지영 양윤경 양효걸 앙효경 엄지인 염규현 오해정 왕종명
유재광 유충환 윤효정 이남호 이세옥 이용주 이재훈 이정신 이정은 이지선 이필희 이학수 이해인 이혜온 이호찬 임경아 임명현
장미일 장인수 장준성 전봉기 전재호 전준홍 전훈칠 정규묵 정승혜 정시내 정준희 조윤정 조의명 조재영 조현용 조효정 지영은
최창규 최형문 최 훈 한동수 허유신 현영준 현원섭

[MBC 보도영상협의회]-가나다 順

80년대 입사

강현철 고재규 권태일 김선천 김억동 김태우 나종석 방승찬 방완규 *서영호 서인성 서진교 서태경 심승보 심재구 오수해 우대희
윤석경 이병익 이상진 이수용 *이수향 이우성 이호영 임왕석 전광선 정윤석 조수원 주원극 진병옥 최승정 함상호

90년대 입사

고현준 김경배 김민호 김상수 김용현 김창규 김태형 나준영 문철학 박병근 박종일 박천규 송록필 안광희 양동암 이세훈 이용안
이정섭 이주영 이창순 이창훈 임정환 장재현 정민환 정용식 조윤기 최승호 최호진 허행진 황상욱

2000년대 입사

구본원 권지호 권혁용 김기덕 김병환 김신영 김신주 김우철 김재석 김태효 김해동 박동혁 박주영 박주일 박지민 방종혁 배윤섭
서두범 서현권 손재일 양홍석 오 령 우성호 윤치영 이성재 이정근 이종혁 이형빈 정연철 정우영 정인학 지영록 최경순 현기택

(* 표시는 황희만 부사장의 선배 또는 동기로, 편지의 뜻에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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