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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독일= 서명준 통신원

지식경제의 시대에 이른바 인터넷 해적행위는 미디어업계의 오래된 불만사항이지만, 그것이 오늘 미디어산업 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더구나 노동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노조단체마저 일방적인 카피라이트 정신에 굴복하는 것은 정말 의외이다.

이것은 최근 독일 미디어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세계지적재산권의 날에 맞춰 지난달 26일 베를린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이날 화두는 불법복제와 파일공유 등 지식경제의 존재기반을 둘러싼 논의였다.

먼저 독일음반산업협회는 아무도 서점에 진열된 서적의 일부를 무료로 가져가지 않는 것처럼 인터넷 무료다운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저작권료나 공영방송수신료에 해당하는 유료화 기준이 지식상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볼멘소리다. 하지만 이날 공영방송에 적대적인 민영방송협회조차 수신료를 빗댄 이런 극단적인 호소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최근 한 지식산업분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지식경제규모가 전체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유럽연합(6.9%)과 독일(6.5%)에서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향후 5년 뒤 ‘해적행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매출손실은 약 100억 유로였는데, 2015년이 되면 320억~560 유로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고용손실도 크게 늘어 2008년 18만 66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데 이어 2015년에는 최소 61만 1300개, 최대 120만개까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시장분석은 미디어자본을 비롯하여 정치권은 물론 소비자인 국민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일종의 숫자게임에 불과할지 모른다. 더구나 최근 독일 언론들은 이런 경험적 데이터 조사방법과 이론적 근거가 완벽하지 않으므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는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장분석은 여전히 지식자본의 이익을 위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심포지엄을 공동주관했던 음반산업협회와 민방협회, 영화산업협회, 서작상협회, 시나리오작가협회, 통합서비스노조 등은 일련의 주장과 함께 저작권과 관련해 더 강한 규제와 정부개입 같은 극단적 처방을 요구했다.

▲ 독일=서명준 통신원/독일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문제는 이런 처방들이 모순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올 초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전자정보 보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며, 정보통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거부한 바 있다. 독일기자협회도 지적 재산과 저작권 보호를 위해 개인적 제재와 감시, 차단 등을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카피레프트와 카피라이트의 적대구도에서 최소한 노조는 카피레프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독일 노조조차 자신의 본분(!)을 잊고 미디어자본의 개별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여러 미디어단체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한 자리에서 과감히 의기투합한 것을 보면 마침내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공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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