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라라승진기’ 거칠 것 없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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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경= 배은실 통신원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이트칼라의 직장생활을 그린 영화 <두라라승진기>는 중국에서 ‘재녀(才女)’로 통하는 쉬징레이(徐靜蕾)가 주연과 감독을 맡고 모원웨이(莫文蔚), 황리싱(黃立行) 등이 출연하면서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는 스타 출연진과 쉬징레이의 명성도 있었지만, 소설 자체의 인기도 한 몫 했다.

2007년 출판된 소설 <두라라승진기>는 2009년까지 약 2년간 210만권이 판매되었고, 중국 최대 인터넷서점인 당당왕(當當網)에서 95주 연속 소설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아마존 차이나에서는 9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 두라라승진기
얼마 전에 출판된 2부와 3부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무엇보다 <두라라승진기> 이후 ‘직장에서의 성공비밀코드(職場成功密碼)’, ‘사장님을 잡아라(搞定你的老板)’, ‘직장에서 생존하는 길(職場生存之道)’, ‘직장의 후흑학(職場厚黑學)’ 등의 직장소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일명 ‘두라라 장르’가 형성되었다.

기업 신입사원들은 <두라라승진기>를 직업입문서로 받들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라라 이야기가 빌 게이츠 자서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한다.

이 대세를 몰아, 영화 <두라라승진기>는 개봉 당일 870만 위안의 흥행수입을 거두었고, 개봉 첫 주말 4400만 위안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한 외국계 기업에 행정비서로 들어간 두라라가 각고의 노력 끝에 HR 매니저로 승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국판 아메리칸 드림이 세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끝없이 화자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현상이 반영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 GDP 8.7% 성장을 이룩한 중국과 중국인들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화이트칼라들은 국가와 미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개방역사가 짧은 중국에는 1900년대 초의 미국과 같이 영웅 신화와 수직신분상승의 신화가 난무하고 있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허락된 적이 없었던 물질적 여유와 과학적 성과에 취해 있다. 이들은 중국판 아메리칸 드림을 신봉하고 이를 실현한 이들을 영웅으로 받든다. <두라라승진기>의 인기는 이런 현상의 반영이자, 이 꿈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거침없이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상반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차이나 드림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기업 경영자들이 하나 둘씩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것이다.

▲ 북경=배은실 통신원/ 게오나투렌
SOHO차이나의 판스이(潘石屹)와 장신(張欣)부부는 불교에 귀의했고,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馬云)회장, 왕페이(王菲)와 리야펑(利亞鵬) 부부, 장지중(張紀中) 등은 도교에 귀의했으며, 30대의 도교 장로 리이(李一)는 1만 명 이상의 기업인을 제자로 거느리고 있다. 수많은 기업인들이 리이 장로의 도교사원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에 매진한다.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성공을 향해 달려왔던 그들은 그토록 바라던 성공은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공허함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21세기와 20세기가 공존하는 중국에서는 중산층의 두려움 없는 자신감도 엄연한 진실이고 마음의 허무함에 방황하는 이들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 중 <두라라승진기> 열풍은 전자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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