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의 눈] 김재영 MBC 시사교양국 PD

나는 지금 PD가 아니다. 그러니, 내 이름 뒤에 붙는 MBC 시사교양국 PD라는 타이틀을 이 글에는 붙일 수가 없다. 한 달 째, MBC는 파업 중이고, PD라는 타이틀 또한 사라졌다. 수많은 MBC 기자, 엔지니어,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근행이라는 PD가 있었다. 그 역시 PD라는 타이틀을 버렸지만, 그것은 우리보다 좀 빨랐다. 그는 2009년부터 MBC 노조위원장이고, 지금 파업을 이끌고 있으며 단식 중이다. 단식 일주일 째, 초췌한 그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문득 편집실에서 밤을 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도 그의 눈은 참으로 맑았다.

PD로서 이근행은 그다지 흥행 PD는 아니었다(본인은 그렇게 주장할까?). 하지만 동료들은 따뜻함이 녹아있는 그의 프로그램들을 마음으로 좋아했다. MBC 노조위원장이라는 큰 짐을 맡기 전 〈PD수첩〉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껄끄러운 취재원도 진심으로 대하는 이근행 PD를 동료들은 존경했다. 심지어 당시 이근행 PD가 고발한 ‘물로만 보일러’를 만든 사장에게조차도 그는 참 잘 대했고, 다들 어떻게 저렇게 고발당하는 사장이 인터뷰를 잘해주냐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PD수첩〉을 할 때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한미FTA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필자에게 자신이 믿는, 보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균형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던 기억이 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니, 그것을 광고하는 정부만큼이나 그것을 비판하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뼈아픈 충고였다.

▲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 ⓒPD저널
〈천황의 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고민하며 편집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일본 우익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만들었는데, 다음 날 시청률이 잘 안 나와서 속상해하면서도 웃음을 짓던 그는 역시 PD였다.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입양’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전형적이지 않은 가족 간의 사랑과 아픔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입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까지도 투명하게 보여주며, 사람 사는 모습이 그리 녹녹치 않음을 또한 이근행스러운 화법으로 보여줬다. 맞다. 이근행스럽다라는 말이 있다. 약간 까칠한 듯 보이지만, 사람과 사물을 투명하면서도 따뜻하게 보는 그의 프로그램들은 분명 이근행스러운 모습이었다. 교양국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근행 PD는 시인이다. 시인의 마음을 가졌고, 또한 시인과 필적할만한 문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 김재영 MBC 시사교양국 PD

나는 그런 이근행스러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단식한지 8일째, 그 몸으로도 버티고 서있으면서 연설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다큐멘터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소박한 다큐멘터리스트를 투사로 만드는 이 시대가 슬퍼지면서, 눈물이 났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