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잔디보다 못한 인간인가!”
6일 오후 3시, 서울광장이 개방됐다. ‘표현의 자유 수호 모임’이 주최한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를 주제로 한 집회가 이곳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2007년 대학생 등이 참여한 등록금 관련 집회 이후 집회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경찰이 2년 만에 집회 허가를 내준 것이다. 이를 두고 프랭크 라 뤼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방한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집회 허가라는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광장 전체가 개방된 것은 아니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경찰은 광장의 잔디를 훼손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사용하는 등의 행위를 금하는 조건으로 집회를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날 집회에선 피켓 대신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손펼침막과 풍선만이 등장했고, “지켜내자 표현의 자유, 지켜내자 MBC”라는 간단한 구호만이 조심스럽게 울렸을 뿐이다.
이날 집회에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와 32일째 파업 중인 MBC노조의 싸움이 집중 조명됐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정부를 마음대로 비판할 자유다. 벌금 내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고 욕먹지 않고 공포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라며 “그렇지 않은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병일 활동가도 “모든 표현의 자유는 연결돼 있다”면서 “MBC의 공영방송 사수 투쟁과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별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11일간의 단식 투쟁으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을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황성철 MBC 수석 부위원장은 “이근행 위원장이 의사가 생명이 위험하다며 만류하는데도, 오늘도 해고와 구속의 칼날을 바라보며 입이 아닌 몸으로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파업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권력의, 정권의 방송장악”이라며 “김재철의 MBC 장악은 MBC 내부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권력이 시키면 세상은 울어도 방송은 웃고, 세상은 분노하는데 방송은 박수 치고, 세상은 통곡하는데 방송은 침묵해야 한다”며 “우리는 방송을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버리고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MBC가 장악되면 〈PD수첩〉 ‘검사 스폰서’를 다시는 볼 수 없다. 날카로운 시사풍자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무한도전〉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MBC를 지켜주십시오. 목숨 걸고 단식 중인 이근행 위원장을 지켜주십시오. MBC는 군사정권 칼날 아래서도 방송독립을 위해 20년간 싸워왔습니다. 이 정권이 아무리 후안무치하고 위험스러워도 방송인들의 철학과 양심까지 가두고 억압할 순 없습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권력은 무상합니다.”
또한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MBC노조 조합원 여러분의 희생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 광장도 여러분이 불의에 굴하지 않고 강력히 싸워왔기 때문에 열릴 수 있었다”면서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MBC의 투쟁을 격려했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도 “〈PD수첩〉이 위험을 무릅쓰고 ‘검사와 스폰서’를 방송했다. 그런 MBC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MBC를 지키자. 이근행 위원장과 조합원들의 단식을 끝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자”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집회는 두 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경찰과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다만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은 집회 시작 직후부터 ‘불법집회’라고 경고방송을 한데 이어 오후 3시 40분 1차 해산명령을 시작으로 비교적 강도 높은 발언들이 나올 때마다 해산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