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합원 성토에 부문별간담회 거쳐 10일 저녁 총회서 결정키로

10일 비상대책위원회 결정에 따라 파업 일시 중단을 선언했던 MBC노조가 부문별 간담회와 조합원 총회에서 이를 재논의 하기로 했다. MBC노조는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집행부 회의를 통해 이 같이 결정했다. 노조는 오후 6시 30분부터 부문별 간담회를 진행 중이며, 잠시 후 총회를 속개할 예정이다.

앞서 진행된 총회에선 투표를 통해 파업 중단 여부를 결정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과에 대한 부담이 크고, 자칫 조합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어제까지 데이트 잘 하던 애인이 갑자기 끝내자고 하는 셈”

이날 총회 분위기는 시종 무겁고 뜨거웠다. 예능 PD와 기자 등 20여명의 조합원들은 파업 중단 여부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고, MBC 방송센터 1층 ‘민주의 터’를 가득 메운 700여 조합원들은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자리도 뜨지 않은 채 의견을 경청했다.

노조 집행부의 결정에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다수의 조합원들은 파업 중단 결정을 강하게 성토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근행 위원장을 향하던 엄청난 환호와 박수는 파업 중단 결정을 비판하는 조합원들을 향해 터져 나왔다.

▲ MBC노조 조합원들이 10일 오후 총회에서 파업 일시 중단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영상미술부문 한 조합원은 “이번 결정이 집행부에 도움이 되나, 구성원들에 도움이 되나, MBC에 도움이 되나. 이번 파업에서 우리에게 모아졌던 지지들을 다시 모아낼 자신이 있나. 떨어진 신뢰를 만회할 자신이 있나”라고 반문하며 “많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겠지만 이번 파업 중단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능국의 한 PD도 “천안함 뉴스가 MBC 파업 이슈를 다 집어삼키고, 이제 지방선거 국면으로 넘어가 힘든 상황이니 향후 더 큰 이슈를 가지고 나오자고 했는데, 월드컵 때 맞춰 〈PD수첩〉 없애고, 아시안게임 때 집행부 자르고 하면 지금과 상황이 다를 거라 생각하나. 그때 다시 파업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많은 이들은 특히 이번 파업 중단 결정의 절차상 문제를 지적했다. “분하다”, “파업이 장난이냐”는 발언이 나오고 일부는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기까지 할 정도로 여론 수렴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비대위가 투표로 결정한데 대한 반발과 배신감이 커 보였다. 한 조합원은 “결론을 내려놓고 토론하는 건 무슨 의미냐”고 꼬집었고, 다른 조합원도 “상식적으로 토론을 먼저 한 다음 비대위 투표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시점도 문제가 됐다. 파업 4주차를 지나면서 MBC노조의 투쟁은 집행부 주도에서 부문별·사번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지난 3일 보도부문 기명 성명을 시작으로 9일까지 7개 직능단체 소속 1028명이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등 투쟁 열기가 고조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집행부가 ‘국면 전환’을 이유로 파업 일시 중단을 선언하자, 다수의 조합원들은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PD는 “1028명이 불신임을 결의한 것이 김재철 사장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일 수 있다. 이를 두고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열의에 찬 비판을 어떻게 투쟁으로 승화할 것인지 판단하지 않고 국면 전환으로 받아들이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며 집행부와 조합원들 간의 ‘인식차’를 꼬집었다.

또 한 기자는 “우리는 김재철에 대해 정치적 사망선고라고 생각하지만 내일 당장 조선·중앙일보에 ‘원칙 지킨 김재철의 아름다운 승리’ 이런 식의 사설 제목이 나올까봐 두렵다”며 “해석은 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이 싸움을 여기서 접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사측과의 이면합의를 통해 파업 중단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근행 위원장은 “막후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도, 그럴만한 사안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MBC도 결국 KBS와 YTN의 뒤를 밟게 될 것”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5개의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현장 투쟁을 이어간다는 노조 측 계획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 기자는 “현장에서 파업을 하는 것과 같은 타격을 주고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기자도 “현장에서 싸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YTN 사례에서 알 수 있다”며 “공정방송협의회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이근행 위원장이 조합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이번 파업 중단 결정이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한 예능 PD는 “파업을 여기서 접는다는 건 시간을 끌고 월급 안 주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알아서 떨어진다는 선례를 저들에게 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월급 못 받고 프로그램 떨어지고 만신창이 되면 알아서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한 기자는 “지금 경영진 혹은 그 윗분들은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손만 올린 상태다. 그런데 우리가 고소 엄포와 처벌 얘기만으로 파업을 접는다면 우리의 내적 결의나 정식적 승리가 어떻든 충분한 출혈 없이 협박만으로 고개를 숙인 게 돼 버린다”며 “저들이 추악한 본성을 더 드러낼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갈기갈기 찢어져선 안 된다”

노조 집행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은 “투쟁을 멈추는 게 아니라 파업을 멈추는 것”이라며 “파업이 아니어도 우린 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기자는 “우리 뉴스를 안 만들고 훌륭한 예능프로그램을 안 만드는 것을 ‘저들’이 좋아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며 “민주화를 위한 싸움은 한판 씨름이 아니라 42.195킬로미터를 뛰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 중단에 관한 논의가 노조의 분열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우려가 컸다. 다른 기자는 “김재철과 정권이 진짜 승리를 느끼는 순간은 노조가 깨질 때”라며 “집행부가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 판단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믿겠다”고 밝혔다.

박성제 전 MBC노조 위원장도 “파업을 중단한다는 비대위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조합원 투표로 총의를 결정하는 것은 조합의 신임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라며 “노조가 분열되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파업가’의 명제에 동의한다면 나머지 시간 적어도 집행부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