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허탈감…뜨거웠던 1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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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허탈감…뜨거웠던 14시간
“‘파업=필패’ 선례 남을 수도” VS. “파업 중단이 싸움 끝 아냐”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0.05.12 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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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노조 총회는 지난 10일과 11일 이틀간 14시간에 걸쳐 시종 뜨겁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이 자리에선 노조 집행부의 결정에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성토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특히 파업 중단 결정의 절차상 문제가 질타를 받았다. “분하다”, “파업이 장난이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일부는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기까지 할 정도로 여론 수렴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비대위가 투표로 결정한데 대한 반발이 컸다. 일부 조합원들은 “결론을 내려놓고 토론하는 건 무슨 의미냐”고 꼬집었다.

시점도 문제가 됐다. 파업 4주차를 지나면서 MBC노조의 투쟁은 집행부 주도에서 부문별·사번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60여명이 이근행 본부장을 따라 자발적으로 동조 단식에 나섰고, 1028명의 사원들이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집행부가 파업 일시 중단을 선언하자 다수의 조합원들은 허탈감을 나타냈다.

▲ MBC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일시 중단’을 두고 이틀간 격론을 벌였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진은 파업 36일째인 지난 10일 MBC 본사 1층 ‘민주의 터’에서 열린 조합원 전체 총회 모습.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현장 투쟁’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한 기자는 “현장에서 파업을 하는 것과 같은 타격을 주고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기자는 “같이 해서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개인이 이길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파업 중단 결정이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한 예능 PD는 “파업을 여기서 접는다는 건 시간을 끌고 월급 안 주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알아서 떨어진다는 선례를 저들에게 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월급 못 받고 프로그램 떨어지고 만신창이 되면 알아서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반대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투쟁을 멈추는 게 아니라 파업을 멈추는 것”이라며 노조 집행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한 기자는 “우리가 뉴스를 안 만들고 훌륭한 예능프로그램을 안 만드는 것을 ‘저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민주화를 위한 싸움은 한판 씨름이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파업 중단에 관한 논의가 노조의 분열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컸다. 또 다른 기자는 “김재철과 정권이 진짜 승리를 느끼는 순간은 노조가 깨질 때”라며 “집행부가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 판단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믿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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